[친절한 Life씨]노래하는 고속도로

입력 2007-12-27 14:03:27

상주~청원 고속도로 달리면 도로에서 동요가 흘러나와요

가만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너무 빨리 달려도 놓치고 만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궁금해서 둘러보는 순간 노래는 끝나버린다. 이른바 '노래하는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느낄 수 있는 소감들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관련 소식을 자주 접했지만 정작 차를 타고 달리다 갑작스레 차를 온통 휘감는 멜로디가 들려오면 놀랍고 당황스럽게 마련이다. 이럴 때 노래하는 고속도로의 원리가 되는 그루빙(grooving), 즉 홈파기에 대해 그럴 듯한 설명을 곁들일 수 있다면 훨씬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 어디에 있나

아쉽게도 아직 노래하는 고속도로는 많지 않다. 전국에 2곳 뿐. 대구·경북 인근에는 최근 개통한 상주-청원 고속도로에 있다. 청원에서 상주쪽으로 68.6km를 가면 노래가 시작된다.

680m를 달리는 동안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하는 동요 '자전거'가 흘러나온다. 물론 가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바퀴가 지면에 마찰하면서 아래에 있는 홈을 빠른 속도로 지나갈 때 멜로디가 나오도록 된 것. '자전거'를 선정한 이유는 바로 이웃한 도시 상주가 바로 '자전거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면 약 20초 동안 동요 전곡을 들을 수 있다.

또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고 판교 쪽으로 달리다보면 도로에서 노래가 나온다. 103.2km 지점에 가면 '떴다 떴다 비행기'로 시작하는 동요가 나온다. 이곳 역시 344m 구간에 걸쳐 12초 동안 노래가 계속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 왜 만들었나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멜로디 구간이 만들어진 곳은 모두 도로 굽이와 경사가 심하고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사고 위험이 높은 곳. 한국도로공사는 이 구간의 제한속도가 시속 110km지만 안전운행을 유도하기 위해 시속 100km에서 최상의 선율을 들을 수 있게 설계했다. 최근 상주-청원 도로를 다녀온 한 운전자는 "아직 통행 차량이 많지 않아서 과속할 위험도 있고 아울러 졸음이 오기도 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멜로디에 깜짝 놀라서 다시 운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수도권 고속도로 사고 유형 조사에 따르면, 전체 사고 중 졸음운전, 과속, 전방주시 태만 등 운전자의 주의력 부주의가 전체 사고의 6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교 구간의 경우, 멜로디 도로가 만들어진 이후 사고가 없었다고. 도로공사 관계자는 "판교 구간은 내리막에 S자 커브 구간이어서 교통사고 다발지역이었다."며 "운전자들의 집중력을 높여서 사고를 줄이는 방법을 찾다가 이번에 노래하는 고속도로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용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고 도로공사측은 설명했다. 서울외곽선 판교 구간의 경우 공사비가 5천만 원, 상주-청원 고속도로는 9천만 원이 들었다. 노래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해서 아무 곳에나 시공할 수는 없다. 굽은 내리막길이어서 사고 위험이 큰 구간이어야 하고, 인근에 주택지 등이 없어서 멜로디 소리에 따르는 민원 발생이 없는 곳이라야 가능하단다.

◇ 어떻게 소리가 날까

원래 고속도로 노면에 미끄럼과 과속을 방지하는 횡방향의 홈파기(그루빙)을 시공하면 타이어면과의 마찰로 인해 별로 듣기에 좋지 않은 '드르륵'하는 강한 소음만 이어진다.

하지만 홈파기를 시공할 때 홈과 홈 사이 간격을 조정하는 정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주행시 타이어의 진동음(소음)을 멜로디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루빙의 간격에 따라서는 음의 높이가, 폭에 따라서는 음의 양이, 개수에 따라서는 음의 길이가 각각 달라지는데, 이 원리에 따라 멜로디가 흘러나오도록 그루빙 간격과 폭, 개수를 각각 조절해 시공한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모든 음(音)은 각자 고유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 도는 261.6Hz(헤르쯔), 레는 293.7Hz, 라는 440Hz 정도이다. 자동차의 속도를 만들어내야 할 음의 주파수로 나누면 그루빙의 간격을 얼마나 해야할 지가 계산돼 나온다.

가령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를 이용해 주파수가 261.6Hz인 '도' 소리를 내려면 홈을 9cm 간격으로 파면 된다. 아울러 '도' 소리가 얼마나 길게 나오는 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루빙의 갯수에 달려있다. 9cm 간격의 홈을 10개 파는 것보다 20개 파면 그만큼 '도'는 길게 소리난다. 상주-청원 고속도로의 경우, 온음(♩)을 기본형으로 20m, 2분음표(♪)는 10m, 4분음표는 5m 길이가 된다. 여기에다 홈 하나 하나의 크기를 얼마나 넓게 파느냐에 따라 소리의 크기가 달라진다. 쉽게 말해 홈 넓이에 따라 볼륨도 조절할 수 있다는 뜻.

하지만 도로에 적용된 악보가 원래 악보와 똑 같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울외곽순환도로에 사용된 음은 도, 레, 미가 아니라 사실 솔, 라, 시이다. 적절한 간격을 맞추기 위해 조옮김을 한 것. 사람의 귀에는 어떤 음을 기준음으로 잡더라도 음 사이의 간격, 즉 진동수를 6%나 12%씩 조절해가면서 음을 올리면 도, 레, 미로 들린다고.

◇ 다른 궁금한 점들

노래하는 고속도로의 시초는 일본에 있다. 홋카이도 나카시베쓰시에 있으며, 지난 2001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멜로디 도로'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올해 군마현 누마타시, 와카야마현 기미노쵸, 아이치현 도요타시에 하나씩 순서대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일본의 것은 베껴온 것이 아니냐고? 우리의 '멜로디 도로'와 일본의 것과는 야간의 차이가 있다. 일본의 경우, 아스팔트를 위로 튀어나오게 해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는 다 닳아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콘크리트에 홈을 판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5년 이상, 최장 30년까지 약간의 관리만으로도 유지가 가능하다고.

현재 이 기술은 특허출원 중에 있다. 한국도로공사 김운태 팀장은 "도로공사가 특허료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이 공법으로 특허를 낼 경우, 다른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업자가 멜로디 도로를 만들 때 특허료를 내야하는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멜로디 도로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문의가 잇따르고 있지만 아직 3번째 멜로디 도로는 어디에 어떤 노래가 시공될 지 결정된 바가 없다. 김 팀장은 "인천공항을 연결하는 신공항 고속도로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 전국의 지자체에서도 문의가 빗발치고 있지만 아직 시공이 결정된 곳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노래하는 도로의 핵심인 홈에 눈이나 먼지, 쓰레기 등이 끼면 어떻게 될까하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적설량이 많을 때는 전체 도로가 눈에 덮혀 멜로디 구간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겠지만 눈이 녹으면 원상회복 될 것이고, 먼지나 쓰레기 등도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들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노면에 크게 이물질이 낄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눈이나 빗물이 쌓이거나 홈에 먼지 등이 쌓이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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