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2008 고려대 수시 2-2 논술고사

입력 2007-12-25 07:28:18

'인성시장' '감정노동' 등 3개 논제 출제

2008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논술고사는 11월 24일 치러졌다. 인문계 논술 제시문은 '인성 시장'에 관한 글, '감정노동'에 관한 글, 시 한 편, 그리고 보건 및 사회복지 사업 종사자 수의 추이를 보여주는 통계표로 구성되었다. 수험생들은 제시문을 읽은 뒤 세 개의 논제에 답해야 했다. 첫째 논제는 제시문 이해와 요약 능력을 요구하는 문제이고, 둘째 논제는 두 번째 제시문의 논지를 바탕으로 세 번째 제시문을 해설하는 것이었다. 셋째 논제는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눠 물었다. 대학측은 난이도의 층위를 설정하고 채점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3개의 논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제시문은 고려대학교 입학처 홈페이지 oku.korea.ac.kr에서 찾을 수 있다.)

1. 제시문(1)을 4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통합교과형 논술의 전형적인 1번 문제 요약하기는 학생들이 제시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간혹 요약을 제시문의 발췌·정리로 오해하거나 자신의 감상이나 의견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것은 큰 잘못이다. 요약하기란 긴 글을 읽고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찾아 간단히 정리하는 것이자, 장황한 글을 줄여 논거를 찾고 그 논거에서 주제를 뽑아 한 줄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요약하기는 글의 핵심단어 찾기에서 출발하고, 첫 문장은 글의 논점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이 글은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를 다룬 글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시장에서는 단순히 상품이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인성마저 상품으로 판매된다. 기업들은 우수한 품질의 상품 개발과 함께 판매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교육시킨다. '고객은 왕이요, 소비자는 구세주'라는 말처럼 각 기업들은 고객에게 최상의 친절 봉사 감동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판매원들은 자기 내면과 상관없는 '규율로서의 인성'을 관리하고 키워가도록 강요받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친절이 인간의 덕목으로서가 아니라 최고의 이익을 얻기 위한 판매의 도구로 사용되는 데 있다. 그들의 미소는 상업적인 미끼이며, 고도로 훈련된 판매 전략이며, 처세를 위한 윤리 방침이다. 많은 공적·사적 공간에서 사람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서로를 대하고 있지만 타인의 친절을 의도된 친절이나 가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웃고 있지만 본심이 아니라'는 느낌을 가지게 될수록 인간에 대한 상호 불신이 자라며 또한 자기 내면과 상반된 행동의 반복 속에서 자기소외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넘쳐나는 친절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어진다.

예시답안을 보면 알겠지만 본문에 나와 있는 순서대로 요약하지 않고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본문에 있는 내용과 유사한 다른 내용을 써도 된다. 요약하기에서 꼭 피해야 할 것이 제시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핵심 단어를 자기식으로 풀어 설명하고, 같은 내용도 새롭게 배치하는 방법을 쓰면 된다.

2. 제시문(2)의 논지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3)을 해설하시오.(700자 내외)

논지란 논점에 대한 주된 생각을 말한다. 제시문(2)에서 가장 두드러진 단어는 '감정노동'이다. 논지를 밝히라고 했을 때는 논점 즉 '현대인의 감정노동'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즉 '개개인의 삶을 스트레스의 연속으로 만드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내면 된다. 700자 쓰기니까 따로 서론이 필요 없이 바로 제시문 분석으로 글을 시작하면 된다.

제시문(2)에서는 현대 사회에는 감정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을 임무로 하는 노동(직업)이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감정노동 종사자들은 상품이라는 무정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유정물을 대상으로 일한다. 그들은 자신의 대상인 고객이 편안함을 느끼도록 연기를 해야 하는데, 단순히 표면 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최면 상태인 인내와 포용심을 키우기를 요구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은 타인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자신의 욕구를 부정하거나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육체의 무의식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시 속의 사무원은 전형적인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제시문(2)에서처럼 자신의 욕망은 철저하게 억압하면서 타인(상사, 조직, 가족)의 욕구에 맞추어 한평생을 살아간다. 시 속의 인물은 30여 년을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직장에 출근하여 '손익관리와 영업이익'에 대해 고행하듯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일하고, 신에게 무릎을 꿇듯이 상사에게 허리를 굽히며 한 번도 힘들다 투정부리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직장생활을 시인은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한국의 장년들에게 정작 남은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월급과 나이 들어 빠지는 머리카락과 창백한 건강뿐이다.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문득 자신의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공허와 빈곤감만을 떠안게 된다. 끝내 인간다운 삶을 상실하게 되고, 쓰다가 고장 나면 버리고 새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의자와 같은 사물로 취급된다.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인간의 사물화를 묘사한 것으로 감정노동 종사자들의 삶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고려대 수시 논술은 모의 논술에서 보여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미리 풀어 본 학생의 경우 문제가 생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시가 한 편 나왔고, 통계 자료가 제시되었다. 시를 해석할 때는 근거 + 주장의 형태로 글을 서술하는 것이 좋다. 시인이 여기저기 던져놓은 단서를 작은 따옴표로 인용한 뒤 그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의 문체로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제시문(2)의 구절과 연결시키면 더욱 좋다. 학교에서 시를 자기식으로 해석해보지 않고, 교사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기만 했던 학생이나 참고서 내용을 암기하는 것으로 대체한 학생들은 이런 문제가 어려울 수 있다. 자유시, 서정시, 주제 : 현대 직장인의 비극적인 삶, 태도 : 현실 비판적 이렇게 적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꾸준한 학교 수업, 특히 자기주도적이고 문제해결적 태도로 수능을 준비한 학생이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유형이다. 수능이 끝나면 유명논술강사를 찾아 강남으로 학원으로 가지만 단기속성 암기식 대처로는 한계가 있음을 고려대 문제를 통해 알 수 있다.

3. (4)의 에 나타난 보건 및 사회복지 사업 종사자 수의 추이를 한국 사회의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하시오. 그리고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이들 종사자들의 사회적 삶에 관해 논의하시오. (700자)

논제가 길 때는 끊어 읽어야 한다. 논제에 이미 글에 들어갈 내용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①보건 및 사회복지 사업 종사자 수의 추이(시대에 따른 증감 상태)를 ②한국 사회의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1차, 2차, 3차 산업 종사자들의 증감과 연관짓고, 시대적 큰 변동이 있는 부분을 찾아 해석해 주고)하시오. 그리고 제시문들을 참고하여 ③이들 종사자들의 사회적 삶(보건 및 사회복지 사업 종사자들의 개인적 삶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 집중해서)에 관해 논의하라는 요구이다. 이 세 가지 내용을 한 문단씩 잡아 분량을 조절하면 된다.

먼저 수의 추이를 살펴보자. 1995년부터 그들은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의 기점이다. 왜 이때부터 나타나 계속 증가하고 있을까. 먹고살기 바빴던 경제성장 시기에 도외시되었던 사회복지가 관심사로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또 그대로 방치하기 힘들 만큼 우리 사회의 소외와 정신적 피로가 심각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등장은 2차 산업이 감소세로 돌아들고 3차 산업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1995년에는 3차 산업 종사자의 숫자가 약 7%정도 증가한 것에 비해 복지 담당자들의 증가는 약 30% 가까이 높게 증가한다. 1990년 이후 우리 사회는 산업사회를 벗어나 컴퓨터와 인터넷의 확산에 기반한 선진국형 서비스산업 중심사회로 변천한다. 단순히 상품을 많이 만들어 내다파는 대량생산의 시대가 아니라 다양한 고객의 취향과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생산하고 판매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특히 은행, 보험, 관광, 레저와 같은 서비스 분야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 고객감동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이전 사회에 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시에 나타난 것처럼 언제든지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영업이익과 재고자산 부실채권'의 서류더미에서 사람의자가 되도록 혹독한 삶을 살아간다. 경쟁과 생존에 대한 강박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한 사람들은 병원으로 가고, 외롭고 가난한 복지시설에서 늙어가는 노인이 늘어난다.

그럴수록 사회복지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는데 문제는 이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하는 노동 또한 자신이 돌보아야하는 환자들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보건 및 사회복지 사업 종사자들은 극도의 자기 인내와 포용성을 요구받는다. 단순히 얼굴 표정을 친절하게 치장하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에서처럼 자아 개념과 모순되는 직업 윤리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내적 혼돈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환자와 치료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거대한 자아분열과 거짓친절만 넘치는 가면의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논술 문제에 나오는 통계자료는 학생들의 수리능력을 파악하기보다는 자료의 해석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생활과 유리된 수학적 지식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사칙연산만 할 수 있으면 가능한 통합적 사고의 수리적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각종 현상이나 인간의 개인 심리조차도 수치와 통계로 표현하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숫자가 의미하는 함의를 해석하고 그 진의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통계자료를 분석할 때는 가로 세로의 변화를 증감형태로 살피는 것이 일차적이나 단순한 숫자의 증감보다는 증감비율로 나타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증가하다가 감소하는 시점은 유의미한 해석이 필요한데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극점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왜 이런 변화가 발생하였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검토하고 제시문과의 연관성을 파악해야 한다. 학생들이 칸을 채우기 위해 1차 2차 3차 산업의 변화를 장황하게 풀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글의 중심이 흐려지고, 단순한 수학적 지식 나열에 불과한 글이 되기 쉽다. 논점과 큰 연관이 없는 것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이 좋다.

이금희(대구통합교과논술지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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