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아오면서 저마다 새 기분으로 맞이할 것이다. 해맞이가 유행하면서 바닷가는 사람들의 홍수로 발디딜 틈이 없다. 차제에 신년 벽두부터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 두 군데를 추천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첫째, 태안군으로 '놀러가자.'고 권하고 싶다. '휴가 반납하고 몰려든 인파' 같은 보도에 주눅들 필요가 없다. 예전에 하던 대로 '놀러가는 것' 또한 진짜 도와주는 것이다. 태안군은 서해안고속국도가 뚫리면서 접근성이 용이해 서해 최고의 관광지로 지난 수년간 각광을 받았다. 안면도 꽃축제를 비롯해 태안국립해상공원을 중심으로 한 유수의 경관자원으로 인기를 구가했다. 펜션붐이 일면서 수많은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사고가 터지자 관광버스가 아예 들어오지 않고 있다.
오염도 오염이지만 '미안해서' 차마 놀러갈 엄두를 내지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피해를 결정적으로 입은 지역은 태안군 북서부권인 만리포·신두리에 국한된다. 안면도나 천수만·가로림만·안흥항 등은 직접 피해에서 벗어났다. 피해를 신속보도해 범국민적 지원을 촉구하려는 뜻이 담긴 신문·방송 보도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지나친 선동적 보도로 서부벨트의 전체적 이미지가 망가져 버렸다.
생각보다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예전처럼 음식 사먹고 잠자고 와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다. 그게 피해입은 태안사람들 진짜 도와주는 길이다. 오염된 수산물은 어차피 유통되지 않는다. 기름 냄새 나는 수산물 내다팔 장사꾼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사고 때문에 전국의 수산물판매가 저조하다. 이런 호들갑이 없다. 안심하고 먹자.
기름 제거하러 온 자원봉사자를 제외하고 관광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텅빈 태안반도의 참상이 너무 심각하다. 새해 벽두부터 '놀러가자'고 권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왕 연초 휴가를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굳이 기름 안 닦아도 좋으니 놀러가서 돈 좀 쓰고 오자.
둘째, 금년에는 다시 한번 등대를 찾아가보자. 등대박물관이 서있는, 한국등대문화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호미곶등대가 꼬박 설립 100년이 되었다. 호미곶등대는 압권 중의 압권이다. 그만큼 세인의 눈길을 끌었으며 인구에 회자되었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벽돌만 사용하여 무려 26.4미터의 6층빌딩 높이로 쌓아올렸다. 이러한 축조기술은 오늘날에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니 '근대건축사의 살아있는 학습장'이다. 백 년 전통의 건물, 그런 등대를 세우듯 우리 사회를 설계해 나갈 것을 고민하고 돌아오자.
또한 등대의 소명이 무엇인가. 자신을 불태워서 남을 밝혀주는 기꺼운 역할 아닌가. 누구나 '등대가 되자.'고 말을 한다. 우리 시대의 그늘진 곳을 밝혀주고, 고난에 떨고 있는 이들을 밝혀줄 등대 같은 사람들이 곳곳에서 출현해야 한다. 양극화의 그늘은 정부나 재계·시민사회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치유 불가능하다. 험난한 곳에서 방황하는 배들을 밝혀주는 등대 같은 정신이 적극적으로 요망되는 우리 사회이다. 가령, 금년에 대학 문을 나서는 또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청년실업의 대란에 휩싸여 인생의 들머리에서 방황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들을 다함께 극복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화합이고 상생의 힘이다.
2008년은 이래저래 바다와 강 같은 '물'이 화두가 될 한해가 될 것이다. 첫째, 태안의 미증유 사태가 보상문제, 환경복원 등 제반 문제로 얽혀들면서 복잡해질 것이다. 둘째,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대운하논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압도적 당선과 별개로 대운하의 실효성과 친환경성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2007년 연말에 여수해양엑스포가 결정되었다. 선거에 가려졌으나 대단히 중요한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상의 세 가지 문제만 가지고도 2008년 한해가 물을 매개로 한 바다와 강이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사족을 붙인다면, 역대 대통령 중에서 '김영삼=거제도, 김대중=하의도, 노무현=진영읍, 이명박=포항' 등정식이 나온다. 섬이나 항구, 아니면 바닷가에 근접한 곳에서 출생했다. 바다의 거센 기를 받았나, 우연 치고는 재미있다. 태안군의 목불인견 같은 사고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솔직한 심정은, 성장·개발도 좋지만 공들여서 가꾸어놓은 환경을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망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도시와 농촌, 그러한 환경을 꿈꾸고 누릴 권한이 우리에게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안전사회'에 대한 희망을 기대해본다. 사고 없는 한해, 너무도 상투적 바람이지만, 또한 너무도 절실한 것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상시적 위험사회'이기 때문이다.
주강현(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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