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 웰빙 먹을거리로 진화

입력 2007-12-22 07:51:38

▲ 엿도 진화한다. 형태는 물론이고 원료의 진화에 따라 맛과 기능이 다양한 엿이 선보이고 있다.
▲ 엿도 진화한다. 형태는 물론이고 원료의 진화에 따라 맛과 기능이 다양한 엿이 선보이고 있다.

날씨가 추워지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전후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중에 등장하는 엿. 형태는 물론이고 원료의 진화에 따라 맛과 기능도 갈수록 다양화하고 있다. 이렇다 할 기호식품이 많지 않았던 1960, 70년대 까지만 해도 누르스름한 조청이나 흰색 일변도의 엿이 군것질 거리로 사랑을 받았지만 웰빙을 추구하는 요즘에는 달고 끈적끈적한 성질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렵게 된 때문이다.

◇엿 어떻게 만들까?

쌀을 물에 불려서 고두밥을 지은 후 보리를 싹 틔워 말린 맥아(엿기름)와 7대 3 비율로 혼합해 9시간 정도 발효시킨다. 이때 '식혜' 상태가 되는데, 이를 잘 분리해 10시간 정도 끓이면 조청이 된다. 다시 조청을 5시간 가열하면 엿이 탄생한다. 조청(造淸)은 익힌 쌀·고구마·옥수수·감자 등에 엿기름(보리싹)을 넣어 당화해 겔 상태가 된 것을 말한다. 엿기름은 보리싹으로 전분을 분해, 당으로 만드는 효소(아밀라아제 등)를 함유하고 있다. 전분에 엿기름을 넣고 물을 더해 적당한 온도로 따뜻하게 해주면 가수분해가 일어나서 녹말이 당으로 변한다. 녹말의 소스에 관계없이 당이 생성되는데, 곡물에는 녹말 외에 각기 다른 이물질이 있어 맛과 향이 달라진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달짝지근한 물(가령 밥으로 만들었다면 식혜)을 거르고 졸이면 끈적한 액체의 조청이 된다. 이때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전분질과 단백질 등이 서로 반응, 갈변이 되면서 혼탁해진다. 조청을 눋지 않게 잘 저으면서 더 졸이면 점도가 아주 높은 액체가 되는데 이것을 굳히면 엿이다.

◇엿의 성분은?

엿기름에 '아밀라아제'가 많고, '아밀라아제'는 녹말을 맥아당(=엿당, maltose)화한다. 이 맥아당은 포도당 두 개가 결합한 것. 반면 설탕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한 것이다. 맥아당은 설탕보다 포도당을 2배나 내놓는다. 하지만 과당이 포도당보다 단맛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맥아당은 설탕에 비해 덜 달다. 따라서 맥아당으로 설탕과 같은 당도를 내려면 더 많이 넣어야 하고, 조청으로 설탕과 같은 당도를 낸다면 포도당(칼로리)을 두 배 이상 더 먹게 된다. 혈당지수도 설탕은 64인데 반해 맥아당은 105로 높다. 따라서 당뇨환자들이 설탕을 피하면서 엿이나 조청은 괜찮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시험과 엿

옛날 과거길 봇짐에 손바닥 크기의 강엿을 넣어 가지고 떠나는 풍습이 있었던 것처럼 요즘에도 수험생들에게 엿을 주며 합격을 기원한다. 엿의 끈적끈적한 성분처럼 진학희망 대학에 찰싹 달라붙기를 바라는 주술적인 의미가 강하지만, 수험생에게 엿이 더 없이 좋은 영양식품이기 때문이다.

공부 등 정신노동으로 머리를 많이 쓰거나 신경을 곤두세우면 '아드레날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 몸속의 당분이 소비된다. 따라서 신체는 소모된 혈당을 보충하기 위해 단 것을 요구하게 되는 것. 특히 인체는 에너지를 필요로 할 때 단 것에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된다는 것. 이는 피의 성분인 포도당, 곧 혈당량이 공복감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동맥 속의 혈당량이 낮아져 정맥 속의 혈당량과의 차이가 혈액 100㎖당 10㎎이하가 되면 배고픔을 느낀다. 이때 단 것을 먹으면 동맥 속의 혈당량이 높아져 배고픔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작용이 시험 전후나 시험 당일 주변 사람들이 수험생에게 엿을 챙겨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엿 이야기

엿은 시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혼례 때 엿을 보내면 시집살이가 덜 심하다는 설도 있다. 이는 시집 식구들이 엿을 먹는 동안 며느리 흉을 잡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한다는 데 따른 것. "엿 먹어라." 표현에 얽힌 재미난 일화도 있다. 1964년 중학 입학시험의 선다형 문제 중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으로 채택된 '디아스타제' 외에 보기 중 하나였던 무즙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무즙을 정답으로 표기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집단으로 이의를 제기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 무로 만든 엿을 들고 대입관련기관에 찾아가 엿을 들이밀며 "엿 먹어라! 이 엿 한번 먹어봐라! 엿 먹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엿 먹어라."는 말이 욕이 됐다는 설이다.

◇엿의 종류

엿의 원료로는 일반적으로 찹쌀을 많이 쓰지만 멥쌀·옥수수·조·고구마녹말 등도 주로 이용된다. 주정(酒精, 알코올) 원료와 마찬가지로 엿 원료도 그 지방에서 가장 많이 나는 농산물을 썼다고 보면된다. 지방에 따라 전라도 백당엿·고구마엿, 충청도 무엿, 강원도·경상도 황골엿(옥수수엿 또는 강냉이엿), 제주도·울릉도 호박엿 등이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에는 웰빙시대에 맞춰 주재료에 각 지방별로 몸에 좋은 특산 약초와 과일을 첨가하고, 먹기 좋게 부드러움을 더한 엿들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엿의 특징은 ▷쌀엿=엿기름 가루를 삭혀서 만든 엿, 엿 가운데 가장 달다 ▷무엿=무를 채 썰어 넣고 조려서 만든 물엿 ▷고구마엿=고구마를 삶아서 메주처럼 찧어서 만든 엿 ▷옥수수엿=옥수수가루에 엿기름을 섞어 만든 엿 ▷통옥수수엿=통옥수수를 싹 틔워 만든 엿 ▷호박엿=수수쌀을 놓아 만든 엿으로 애호박을 넣었다 ▷보리엿=보릿가루로 만든다 ▷하늘애기엿=차조로 고다가 하늘타리를 넣어 약용으로 쓴다 ▷약엿=엿에 참깨·호두·생강을 넣고 나무판에 편 다음 대추를 드문드문 박아 만든 엿 ▷꿩엿=봄철에 꿩고기를 넣고 졸여서 만들며, 약용으로 쓴다.

최근에는 옥수수가루와 엿기름을 주원료로 사용하고, 복분자·오미자·어성초·쑥·생강·가시오가피 등 각종 약초 분말을 차 끓이는 양보다 3배 이상 듬뿍 넣어 만든 웰빙엿도 등장했다. 이들 웰빙엿은 곡물을 반죽하듯 밀고 당기는 작업을 1천 번 이상 하는 과정을 거쳐 부드러워졌다. 색깔도 흰색 일변도에서 노랑·검정·보라·자주·초록 등으로 알록달록해졌다.

대백프라자 식품팀 배준용 대리는 "최근 들어 엿의 원료도 몸에 좋은 각종 특산물로 바뀌었다."면서 "그만큼 엿의 맛과 향도 독특해지고 부드러움도 더해져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만큼 값도 비싸졌다."고 말했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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