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장 민희 "김치 맛 좀 봤으면…"

입력 2007-12-21 10:06:30

초, 중, 고교에 다니는 세 자매를 장애가 있는 몸으로 홀로 키우고 있는 장은식(45) 씨는 최근 아이들의 유일한 밥반찬이던 김치마저 먹이지 못하게 돼 한숨이 절로 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복지관이나 동사무소에서 몇 차례 지원을 받았지만 올해는 김장철이 훨씬 지난 12월 중순까지 김치를 주겠다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 장 씨는 "임대 아파트에 사는 이웃 대부분이 김치를 받지 못한 상태라 지원해 달라고 말할 순 없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다"며 섭섭해 했다.

초교생 남동생을 부모 없이 홀로 돌보고 있는 김민희(가명·20) 씨도 올 겨울 반찬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엔 복지관에서 준 10kg의 김치로 겨울을 지냈었지만 올해는 김치 지원이 아예 없기 때문. 김 씨는 "김치가 워낙 비싸 사먹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복지관에서 주는 김치 반찬이 유일했는데 이젠 이마저도 구경할 수 없게 됐다."고 안타까워 했다.

대선 여파와 배추값 폭등으로 겨울철 '김장 김치' 지원이 크게 줄면서 수급권자 등 불우이웃들의 겨울나기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업 후원금과 봉사단체의 성금으로 김장을 했던 것과 달리 올해는 대선 여파로 지원금이 뚝 끊기면서 김장 재원이 마련되지 못한 것. 게다가 배추값마저 지난해에 비해 3배로 뛰면서 각종 단체들이 김장을 예년의 절반 수준만 하거나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에 '김치를 지원해 줄 수 없느냐.'는 민원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남산기독종합사회복지관은 올해 김장 김치를 지난해의 절반인 500상자밖에 만들지 못했다. 지난해 1천500만 원의 기업후원금이 들어왔던 데 비해 올해엔 300만 원의 후원금밖에 지원받지 못했기 때문. 또 배추값마저 폭등, 복지관 측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대구 동구 도동의 한 배추밭에 가서 직접 배추를 가져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해 1천 가구에 김장을 전달했던 것과 달리 500가구밖에 지원하지 못해 곳곳에서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김치를 지원받지 못한 주민들이 기다리다 못해 직접 전화 연락을 해 온 것. 김기훈 남산기독복지관 팀장은 "기업들이 후원금 지원에 대선 전 정치 기부행위로 오해받을 것을 우려, 기부가 급감하는 바람에 올해는 비싼 배추를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새마을부녀회 등 관변단체 역시 올해 비싼 배추값이 부담스러워 수년째 해오던 김장 김치 담그기 작업에서 손을 뗐다. 대신 이불이나 담요 등 대체 물품을 지원하려 했지만 이마저 선거법에 저촉될 것을 우려한 동사무소 직원들의 반대로 지원되지 못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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