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李 대세론' 의심하지 않았다

입력 2007-12-21 10:11:06

김경준 귀국·昌 출마 등 한때 주춤…검찰 무혐의 판정 40%대로 다시 탄

17대 대선은 '이명박 대세론'으로 시작해 '이명박 대세론'으로 끝난 선거였다. 지난 6월 이후 매일신문 등 9개 전국 유력 지방종합일간지가 참여한 한국지방신문협회와 '리서치 & 리서치'가 실시한 6차례의 여론조사와 리서치 & 리서치 자체조사 등 총 12차례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 당선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부동의 1위를 고수했다.

이 당선자 지지율은 대선행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지난해 7월만 해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건 전 총리보다 소폭 뒤졌다. 하지만 추석을 지나면서 국민들 사이에 부동산 대란으로 인한 경제 불안감과 북한 핵실험이 가져다준 안보 불안감이 겹치면서 1위로 올라섰다.

대선전이 본격화된 올해 들어서도 이 당선자는 부동의 1위를 달렸지만 몇 차례 고비를 맞기도 했다. 첫 번째 고비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벌어진 박 전 대표와의 치열한 검증공방. 이 여파로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40%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전까지 최저 15%포인트(p)대를 유지했던 박 대표와의 격차도 12.3%p까지 좁혀졌다.

그러나 이 당선자가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 박 대표의 지지층을 흡수하면서 지지도는 다시 60% 가까이 치솟았다. 대세론을 재확인시킨 것이다. 이 같은 고공행진은 대통합민주신당이 정동영 후보를 경쟁자로 내민 10월 중순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지율이 소폭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50%를 넘었다. 범여권이 지지율 반전을 위한 회심의 카드로 여긴 제2차 남북정상회담도 이 후보의 지지율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11월에 들어 이회창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BBK 전 대표 김경준 씨의 국내 송환이 이뤄진 이후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다시 30%대로 하락하면서 대세론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회창후보는 대선 출마 직후 2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이 당선자를 압박했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는 박 전 대표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데다 검찰이 이 당선자의 BBK사건 연루의혹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림에 따라 이 당선자를 따라붙을 힘을 잃어버렸다. 이는 '이명박 대세론'이 다시 탄력을 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BBK사건 수사의 여파로 부동층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이 당선자의 지지도는 40%대로 다시 올라섰고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직후에는 다시 47.2%까지 올랐다. 이는 이 당선자의 득표율 48.7%에 거의 근접하는 수치이다. 결국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이 실제 투표에도 그대로 반영됐음을 알 수 있다.

정경훈기자 jghun31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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