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유권자의 값어치

입력 2007-12-19 10:46:49

미국 조지아주 케네소 주립대학의 커윈 스윈트 교수는 미국 역대 대선을 분석한 끝에 "국민은 네거티브 캠페인을 사랑한다"고 결론지었다. 유권자는 후보의 정책 등을 비교평가해 지지 후보를 결정하기 보다 네거티브 공작에 쉽게 경도된다는 것. 그 이유는 유권자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유권자 개인이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평가해서 지지후보를 결정해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선거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유권자는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평가하는 수고를 피하고 후보의 정체를 '단박에' 알 수 있는 네거티브에 편승한다는 것이다.

16대 대선에서 괴력을 발휘한 이 법칙이 이번 대선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 네거티브 공작이라면 전문가인 여권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그렇게 철저히 네거티브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유권자들은 꿈쩍도 않았다. 여권이 '한방'으로 기대했던 'BBK 동영상'이 공개됐는데도 이 후보의 지지도는 여전히 견고했다. 사실 여권의 이 후보 공격은 그의 도덕적 흠결이 사실로 드러났음을 감안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네거티브도 아니었다. 여권으로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네거티브 이론은 요즘 대선민심의 분석에 자주 활용되는 '인지부조화' 이론과도 상반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과 어긋나는 정보나 사실을 접했을 때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후보의 견고한 지지세는 그의 도덕적 흠결이 드러났지만 이미 내린 지지 결정을 뒤집지 않겠다는 심리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윈트 교수의 이론이 맞다면 우리 유권자는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에 또다시 말려들었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참으로 헷갈리는 대선판이다.

혹자는 색다른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유권자들은 이 후보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깨끗하다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도덕성을 따진다면 성직자를 뽑아야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분석이 '오버'는 아닌 것 같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민주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값어치만큼 지배됨을 보증하는 체제"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날 우리 국민의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