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秒針(초침) 넘어간다며 "10-9-8…" 카운트다운하는 우주상 유일한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지난 1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상징적인 단어를 선정해 한 해를 되돌아보는 것도 인간만의 유별난 행위다. 정해년도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임을 다시 입증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것이다.
일본과 중국은 벌써 '올해의 한자'를 선정해 발표했다. 불량식품 파문에다 스모계의 불상사 등으로 큰 충격을 받은 일본은 올 한 해 세태를 집약하는 단어로 '僞(거짓 위)'를 선정했다. 중국은 식료품과 부동산'주가 등 모든 것이 올랐다는 뜻에서 '漲(불어날 창)'을 뽑았다고 한다. 사자성어를 즐기는 한국의 식자들은 黨同伐異(당동벌이)-上火下澤(상화하택)-密雲不雨(밀운불우)에 이어 올해는 어떤 말을 뽑아 의미를 부여하고 한 해를 갈무리할지 기대된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은 大道無門(대도무문)이라는 휘호를 즐겨 썼다.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큰 도둑 앞에는 문이 없다'고 엉터리 뜻풀이를 해가며 키득거렸다. 지난 8월 여당이 탈당-합당의 줄넘기로 국민을 어지럽게 할 당시 한 여당 당직자는 가당찮게도 대통합을 부르짖으며 이 말을 써먹었다.
그런데 사람 심리라는 게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내뱉는 말에 대해서는 별로 귀담아두지 않는 버릇이 있다. 반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화제를 뿌리고 있는 사람의 말에는 귀 기울여 조목조목 따져 보는 경우가 많다. 좋은 예가 이명박 후보가 2007년 화두로 내건 旱天作雨(한천작우)다. '심하게 가물어 싹이 마르면 하늘이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린다'는 뜻으로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대통령에 당선돼 메마른 국민들의 가슴에 촉촉이 비를 내리겠다는 의미로 한 말 같다. 지지율 40~50%를 오르내린 유력 후보였으니 호기 부릴 만도 했다.
17대 대통령 선거일이 바로 내일이다. 호언대로 단비가 될지, 그냥 사자성어 한 번 질러보고 헛물 켠 것인지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지난 1년간 국민들이 지겹도록'BBK 세례'를 받았다는 점이다. 어제 BBK 특검까지 통과됐다고 하니 차후에도 BBK 문제로 시끄러울 것이다. 교수신문이 조만간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정치인의 사자성어와 여러 식자들이 고심해 뽑은 사자성어가 올해는 어떻게 대비될지 궁금하다.
서종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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