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땅 가야산] (24)가야산의 두 마애불

입력 2007-12-17 07:00:00

찌든 마음 씻어주는 천연의 미소

'백제의 미소'란 애칭을 갖고 있는 충남 서산의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동쪽을 바라보는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특히 중앙에 모셔진 본존불(本尊佛)은 양끝이 살짝 올라간 입가에 머무는 미소로 유명하다. 세상의 풍파에 지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 미소로 인해 '백제의 미소'란 아름다운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석벽에 새긴 부처를 뜻하는 마애불(磨崖佛)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인도, 중국, 일본 등에 널리 퍼져 있다. 만든 수법도 양각(陽刻:浮彫), 음각(陰刻), 선각(線刻) 등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는 7세기 무렵 백제에서 마애불을 새기기 시작한 이후 전국 곳곳마다 마애불이 만들어졌다. 불교가 융성한 가야산에도 주목할 만한 마애불들이 있다. 천년 세월을 간직한 가야산 마애불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엷은 미소 머금은 백운리 마애불입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서 용기골~서성재 등산로를 따라가다 백운2교를 지나 50m 정도를 더 가면 서성재로 가는 탐방로와 백운대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백운대로 가는 등산로는 비법정 등산로다. 가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양해를 얻어 백운대로 가는 산길을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걸어 약 800m를 가면 가야산성과 이어진 백운대 아래 쪽에 있는 마애불입상을 만나게 된다. 해발 950m가 되는 높은 곳에 마애불이 있다는 것이 신비스럽다.

이 마애불은 높이 2m, 최대 폭 129㎝의 아래 위로 긴 타원형 석재의 한 단면을 다듬어 조성했다. 마애불 위로 자연석이 지붕처럼 덮여 있는 것이 특이하다. 조각하는 부분이 주위 면보다 튀어나오게 조각하는 양각기법을 썼다. 불상의 높이는 160㎝가량. 두 발을 가지런하게 선 등족립(登足立)이다. 이 마애불이 조성된 시기를 신라 하대인 9세기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통일신라 이전의 형식인 등족립 등을 이유로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를 더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마애불의 머리 부분과 하체는 마모됐지만 비교적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마애불의 뒤편에 광명을 나타내는 광배(光背)도 눈길을 끄는 부분. 타원형 모양의 자연석을 조각하지 않은 채 그대로 이용했다. 인공과 자연이 절묘하게 융합한 것이다. 주름선도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66호로 지정돼 있다.

다음으로 마애불의 손을 살펴봤다. 수인(手印)은 부처님의 손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불상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백운리 마애불은 '시무외 여원인(施無畏 與願印)'을 하고 있는데 오른손이 다소 처진 편이다. 오른손을 꺾어 어깨 높이까지 올리고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펴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했다. 이른바 시무외인이다. 왼손은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옷자락을 쥐는 데서 유래했다는 여원인을 하고 있다. 시무외 여원인은 나를 믿으라 두려움이 없어지고 너의 소원을 이뤄주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리고 미소! 백운리 마애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드는 미소다. 불교 신자들은 물론 백운리 주민들에게 이 마애불은 기도처 역할을 하고 있다. 천년의 세월 동안 마애불은 두려움에 떨거나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중생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더불어 푸근한 위안을 주고 있다. 제수천 전 성주문화원 원장은 "긴 세월에 비해 마애불은 마모 외의 손상이 없어 마애여래상 계보 연구에 귀중하게 쓰일 수 있다."며 "많은 이들이 마애불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도록 등산로가 개방돼야 한다."고 했다.

#극락골 마애불입상!

백운리 마애불입상에 이어 해인사 뒤편에 있는 마애불입상을 찾아 나섰다. 해인사에서 우두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두 갈래로 갈라진다. 바로 토신골과 극락골 등산로다. 극락골 등산로는 자연휴식년제 실시로 등산이 금지돼 토신골을 따라 올라야 한다. 1시간 정도를 오르다 극락골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20여 분을 더 가면 가파른 철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딛고 산등성이에 오르면 마애불입상을 만나게 된다.

길 옆 바위에 돋을새김된 이 마애불은 높이 7.5m로 우람하다. 보물 제222호. 풍만한 사각형의 얼굴에 날카로운 눈꼬리, 두꺼운 입술, 턱주름 등이 표현돼 있다. 귀는 어깨에 닿을 듯 길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뚜렷하다. 어깨는 넓고 당당해 얼굴과 함께 자신만만한 인상을 풍긴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려 가슴에 대어 손등을 보이고 있다. 특히 손은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처리해 사람의 손처럼 생동감이 느껴진다. 머리 뒤에는 단순한 원형의 머리 광배가 있을 뿐인데, 이를 지탱하는 자연광배가 몸광배 구실을 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얼굴과 두 손은 정교하게 조각한 반면 신체는 마치 돌기둥에 새긴 듯 옷주름을 간략하게 처리했다.

이 불상은 각 부분의 표현이 힘있고 당당하면서도 세부 수법에서 세련된 면이 보여 9세기 무렵 만들어진 마애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애불을 찾은 날, 마침 두 젊은이가 마애불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천년의 세월 동안 묵묵히 가야산을 지킨 마애불.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혼탁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보금자리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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