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실화된 식량 안보 위기 대처법

입력 2007-12-15 09:08:12

우루과이라운드는 세계 무역을 GATT(관세무역일반협정) 체제에서 WTO(세계무역기구) 체제로 재편하기 위한 협상이었다. 그게 한창이던 1990년대 초반, 우리의 최대 걱정거리는 농산물 수입 개방이었다. 그렇게 될 경우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농업 자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모두들 그 걱정은 제쳐둔 채 농민들 눈치나 힐끗거렸다. 자연스레 차후 정부 대책이란 것도 거의가 농민 중심으로 흘렀다. 농업 또한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잖았지만 반응이 약했다. 농업을 버리면 그 피해가 농민 아닌 도시인들에게 돌아가고, 식량 안보를 등한시하다간 그 위기가 오롯이 국가로 전이될 것이라고 그렇게 강조했어도 공감자가 드물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그 위기는 기어코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물량 확보조차 쉽잖은 상황이 닥친 것이다. 걱정하던 그때 이후 15년여 만이다. 세계적 이상 기후로 인해 생산은 감소세인데 반해, 바이오 에너지 원료화 및 중국 등 신흥 대국 대두로 인해 소비는 증가세인 게 원인이다. 이런 흐름은 5년여 전부터 점차 악화돼 왔으나 최근엔 갈수록 급박해지는 추세라 했다. 미국 선물시장의 밀'옥수수 최근 가격은 일 년 전보다 무려 80∼90%나 급등했고 콩은 65%나 올랐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농산물 수출국들은 자국 내 가격 안정을 위해 잇따라 수출을 제한하고 나섰다. 세계 3대 쌀 수출국인 인도는 지난 10월부터 아예 쌀과 밀의 수출을 중단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밀'옥수수의 수출량을 가능 총량의 30%로 제한하는 할당제를 도입했다. 아르헨티나는 그 수출세를 대폭 인상해 반출을 억제하기 시작했고, 러시아는 지난달부터 밀'보리에 새로 수출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계 최대 콩 수입국인 중국은 지난 10월부터 그 관세율을 3분의 1로 낮췄다. 유럽연합은 수입관세를 아예 잠정 폐지했다. 역내 증산을 위해 10%로 강제했던 휴경 규정마저 폐기했다.

어느새 세계 3위의 곡물 수입국이 돼 버린 한국이 위기 상황에서 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싼 농산물 가격의 안전판 역할을 해 주던 중국산 가격까지 치솟아 더 당혹스럽다. 올해 농산물 무역 적자는 1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5년 사이 60% 이상 증가한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출 흑자를 모두 까먹고도 남는 규모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침 원-달러 환율이 하락해 상당 폭의 국내 물가 충격을 흡수해 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마저 이제 한계에 달해 앞으로는 상황이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올 들어 밀가루'식용유'사료 등의 가격이 급등하고 덩달아 우유'축산물 가격이 뛴 게 그 조짐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우리 또한 내년부터는 농산물 수입 관세를 낮추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식량 안보는 그런 정도의 임시방편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근본적인 대처법은 우리 농업을 살리는 것뿐이다. 국제 곡물가 급등을 단순 대응할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농업 정책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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