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한 잔…따뜻한 술 '청주' 부활

입력 2007-12-15 07:33:53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는 없어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면 따뜻한 술로 추위를 녹이겠다는 주당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술은 차게 해서 마실 때도 있지만 지금처럼 추울 때는 따뜻한 술 한잔이 움츠러진 어깨를 펴줄 뿐만 아니라 세상일로 지친 마음까지 녹여주기도 한다. 따끈따끈한 청주 한잔 쭉 들이켜고 어묵 한 점 집어먹으면 바로 어깨가 펴진다. 시내버스 정거장 두세 곳 정도의 거리는 그냥 걸어갈 수 있다.

▶마시는 법

따뜻한 술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청주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정종'은 일본청주의 한 상표였다. 청주의 제조법은 일본 사케와 비슷하다. 청주는 여름에는 차게 해서 마시고 겨울에는 데워서 마시는 것이 좋다. 또 복어 지느러미를 살짝 구워서 넣어 마시는 '히레사케'는 반드시 80℃ 정도로 데워야 제맛이 난다.

술을 내놓을 때 술집에 따라 불을 붙여서 내기도 한다. 불을 붙이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신주쿠 식당의 허인숙 씨는 "팔팔 끓였을 때 불을 붙이는데 알코올 독기가 다 날아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삼구이초밥의 황도수 씨는 반론을 폈다. "술이 독해서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60, 70년대 술은 지금보다 더 독했다. 그래서 불이 붙은 것이지 독기를 제거하려고 불을 붙인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복어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뚜껑에 넣고 1분 정도 닫아두면 복어향이 가득 차는데 독소 있는 생선 지느러미로 술의 독소를 제거하겠다는 생각에서 넣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그냥 데워서 내놓는 정종보다는 복지느러미를 구워서 넣어 마시는 '히레정종', 혹은 '히레사케'가 더 인기를 끈다. 일본에서는 사케를 마시더라도 50℃ 이상으로 데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80℃ 이상으로 데운다. 잔을 못 잡을 정도로 뜨겁다.

▶어울리는 안주는

따뜻한 정종이나 사케와 어울리는 안주는 단연 어묵이 꼽힌다. 요즘 시내 곳곳에는 일본식 퓨전술집이나 어묵바가 많이 생겼다. 따뜻한 술에는 종로초밥식으로 푹 삶은 어묵 한 접시가 제격이다. 각종 어묵과 무가 어우러진 어묵 국물까지 다 먹고 나면 속이 따뜻해진다.

황 씨는 "원래 정종 안주는 어묵이었어요. 지금은 어느 곳에서나 어묵을 내놓지만 제대로 된 어묵을 맛보려면 오래된 식당에서 맛보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요즘 서울에서는 와인바 대신 사케바가 유행이다. 강남의 도산공원 주변의 고급 음식점들이 사케바로 탈바꿈하고 있다. 강북지역에도 사케바가 들어서면서 '사케벨트'까지 형성되고 있다. 대구에는 일본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지 아직 일본술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다. 시내 초밥집의 정종은 모두 국산 '백화수복' 일색이다. 수성구 등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일식퓨전식당과 사케바가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술 도수가 약한 데다 한두 잔으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 청주, 이래서 좋다!

▶한진희(56·자영업)

겨울이면 1주일에 2, 3차례 시내 초밥집을 찾는다. 지난 12일에도 퇴근하자마자 오랜 친구와 함께 초밥집을 찾은 그는 정종을 '추억'이라고 말했다.

"정종에는 추억이 있어요. 30년 전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실 때는 늘 정종만 먹곤 했어요. 정종은 소주처럼 폭음할 필요도 없고 한두 잔으로도 온몸을 덥힐 수 있는 추억입니다."

▶박재우(44·회사원)

일본유학을 갔을 때 늘 마시던 '사케'의 부드러움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일식당을 찾아 사케를 마신다. 연말송년회모임도 일식당에서 사케로 원샷을 한다.

"여름에는 차게 마시는 게 좋아도 겨울에는 따뜻한 사케 한 잔이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유학시절 비싸서 한두 잔밖에 마시지 못하던 추억도 떠오르고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술입니다."

▶김정식(32·회사원)

일본 사케의 무미건조함 때문에 한국청주를 찾아 나섰다. 며칠 전 대구 도심 종로통의 한 초밥집에서 만난 그는 두 잔째 히레정종을 마시고 있었다.

"겨울에는 따뜻한 술을 찾게 됩니다. 선배의 소개로 입이 델 정도로 뜨거운 정종을 만났는데 아, 너무 좋더라고요."

▨ 청주는 원래 한국 전통술

청주 혹은 정종은 일본술로 알려져 있다.

일본술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니혼쥬'는 '사케'라고 통용되고 있지만 사실 청주와 다름없다.

청주는 일본전통술이지만 원래는 우리나라의 전통술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보리(保利)형제가 누룩을 써서 술을 만들었는데 이를 백제의 인번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전수해줬다고 한다. 일본의 '고사기'에도 응신천왕(AD 270∼312)시대에 백제에서 인번이라는 사람이 일본에 새로운 방법으로 미주(米酒)를 빚어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 때 전수한 양조법이 오늘날의 그것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누룩을 사용, 양조한 청주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도 전래의 곡주 양조법이 계승 발전되어왔고 조선시대에 들어 고급화 추세를 보이면서 제조원료가 맵쌀에서 찹쌀로 바뀌는 등 제조법이 진화되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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