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12월 13일 중국의 장강(양쯔강) 남안의 난징(南京)을 함락한 일본군은 6주 동안 학살을 자행했다. 이 사건은 당시 나치조차도 '야수의 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1937년 7월 루거우차오(蘆溝橋) 사건을 빌미로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중국 만주에서 톈진(天津), 베이징(北京) 등을 점령한 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항저우(杭州)와 상하이(上海)까지 점령한후 난징으로 진격하고 있던 상황.
이 학살에서 희생된 사람이 30여만 명. 당시 난징의 총 인구는 70여만 명이었다. 전후 극동군사재판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개의 자선단체가 난징에서 매장한 유기시체만도 15만 5천337구였고, 그 밖에 양쯔강에도 대량의 시체가 버려졌다.
학살방법도 기총에 의한 무차별사격과 생매장, 또는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는 등 극히 잔학한 방법으로 자행되었다. 또한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방화도 횡행하였다. 피해는 중국인에게만 그치지 않고 중국인 피난민을 구조하였다는 이유로 미국인이 경영하는 병원·학교·교회 등도 약탈됐다.
제2차 세계대전 뒤의 극동군사재판에서 당시의 총사령관인 마쓰이가 이 대학살의 책임자로서 사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일본의 우익들은 이 사건을 '20세기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03년 후세인 전 이라크대통령 생포 ▶1864년 고종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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