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가족생계 짊어진 정희경씨

입력 2007-12-12 10:36:49

"지뢰밭 같은 삶…어린 동생보며 희망 가져요"

▲ 정희경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구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정희경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대구 한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를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휴학계를 내고 오는 길이라는 여대생 정희경(가명·19) 씨. 푹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49)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선택한 2년제 대학이 욕심이 돼 버렸다고 했다. 주방 보조, 서빙, 전단지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학비와 생활비는 언제나 모자랐다. 사업 실패 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46), 열 살 터울의 막내 여동생 민지(9). 하나같이 위태위태한 가족의 운명이 가냘픈 그녀의 어깨를 옥죄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 6년의 시간이 살얼음판이었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 병문안조차 자주 갈 수 없어 괴롭다는 그녀는 복받치는 감정을 힘겹게 추스르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동자엔 불안함이 가득했다.

"배관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유달리 정이 많은 분이셨어요. 배관 기술도 좋아 업체에선 아버지를 자주 찾았지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항상 일 속에 파묻힌 모습이네요. 두 대의 전화기로도 일을 다 처리하지 못할 때가 많았으니까요. 행복했어요.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 뵙지 못했지만 가족에겐 활기가 넘쳤죠."

그래서였을까. 가족 어느 누구도 아버지의 속앓이를 알지 못했다.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업이 점점 위기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긴 한숨으로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는 괴로웠던 지난 얘기를 이어갔다. "딱 7년 전이네요. 1차 부도를 맞았습니다. 집안 곳곳에 압류 스티커가 붙자 가족들도 모든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엄마가 술을 마시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때가…. 여린 성격의 엄마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전세방에서 월세방으로 옮겨갈 때마다 엄마의 눈빛엔 초점이 없어졌지요. 술을 마시는 날이 늘어갔고 아버지와의 다툼도 잦아졌어요. 병원에선 우울증이라고 하더군요. 절대 혼자 두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지만 우리 형편에 엄마 곁을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방치된 엄마는 결국 '알코올성 간경변' 진단을 받았고 나날이 우울증이 깊어갔지요."

그녀는 잠시 멈칫거렸다. 영혼이 무너져가는 엄마를 지켜봐야만 했던 6년의 세월. 마른 침을 삼키며 담담히 이어간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거친 삶의 굴곡이 전해졌다.

"재기를 꿈꾸던 아버지에게 2차, 3차 부도가 터졌어요. 엄마를 챙길 여력도 가정을 돌볼 경제적 여유도 없었지요. 그 스트레스 때문일 거예요." 힘겹게 버텨왔던 그녀의 아버지는 지난달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말 한마디 제대로 내뱉지 못할 정도로 한순간 갓난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녀는 두려웠다고 했다.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곳곳에서 터지는 지뢰밭 같은 삶.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지뢰를 제거하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수백만 원의 병원비, 밀린 월세, 생활비까지 모두 그녀가 끌어안아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을 바라보며 희망을 갖는다고 했다. "민지가 공부를 잘해요. 철이 일찍 들어 부모님 걱정도 많이 해요." 한참 자신을 가꾸어야 할 열아홉의 나이에 병든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그녀에게 동생은 빛과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녀는 동생만은 자신처럼 학업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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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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