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돈값, 사람값

입력 2007-12-11 11:10:31

요즘 모처럼 돈이 대접받고 있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터에 무슨 소리냐고? 예금 급감으로 돈 가뭄을 겪는 은행들이 대출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액을 늘리면서 돈값(이자)이 치솟은 것이다. 저금리에다 시중자금이 넘쳐나면서 '자산 거품론'이 일던 때가 엊그제다. 그러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유령'이 떠돌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돈값은 회복됐으나 사람값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한국적 상황만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 노동자는 물론 한국 노동자들도 중국과 인도, 동남아 노동자들과 무한 저임금 경쟁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기업들은 정규직 노동자 채용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후진국 노동자와 직접적인 임금 경쟁에 나서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某(모) 경영컨설턴트는 최근 대구 강연에서 장성한 자식들 방을 빼지 말라고 충고했단다. 집 떠났던 자식들이 백수가 돼 곧 돌아올 터이니 방을 치우지 말란 얘기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던 고용 상황이 '이구백'(이십대 열에 아홉이 백수)으로 악화되고 있어서다. 백수가 아니더라도 '88만 원짜리' 비정규직 일자리로는 부모 슬하를 떠나 독립하기가 버겁다.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다.

사람값이 계속 추락한다면 부모를 마지막으로 모시고, 자식들에게 맨 먼저 버림받는다던 '샌드위치 세대', '낀 세대'가 '백수 자식'까지 거두는 첫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등이 휘는 정도가 아니라 뼛속까지 골병드는 셈이다. 이 마당에 정부는 공무원연금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국민연금을 '용돈 연금'으로 만들어 버렸다. 비싼 사교육비 들여가며 공부시킨 자식은 백수가 돼서 돌아오고, 노후 대책은 변변찮고,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억장이 무너진다.

여기에 부모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 발길이 줄어드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당장 사교육비부터 줄이고 노후대책을 세우라고 성화다. 하지만 아이들 과외비를 줄이겠다고 결심하는 부모는 소수다. 청년 백수도 춥고, 중'장년층도 춥고, 이 겨울 삭풍에 떠는 사람이 여전히 너무 많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