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이정록 作 '숟가락'

입력 2007-12-11 07:00:00

작은 나무들은 겨울에 큰단다 큰 나무들이 잠시 숨돌리는 사이, 발가락으로 상수리도 굴리며 작은 나무들은 한겨울에 자란단다 네 손등이 트는 것도 살집이 넉넉해지고 마음의 곳간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란다

큰애야, 숟가락도 겨울에 큰단다 이제 동생 숟가락들을 바꿔야겠구나 어른들이 겨울 들녘처럼 숨 고르는 사이, 어린 숟가락들은 생고구마나 무를 긁어 먹으며 겨울밤 고드름처럼 자란단다

장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福(복)자가 쓰인 숟가락 세 개를 방바닥에 내놓으신다 저 숟가락이 겨우내 크면 세 자루의 삽이 될 것이다

쌀밥을 퍼 올리는 숟가락처럼 나무들 위에 눈이 소복하다 한 뼘 두 뼘 커 오를 때마다 나뭇가지에서 흰눈이 쏟아지고 홍역인 듯 항아리 손님인 듯 작은 새들이 날아간다

하늘이 다시 한 번 털갈이를 시작한다

우리도 삼형제였다. 우리도 福자가 쓰인 숟가락을 썼다. 그 숟가락으로 수북하게 퍼 담은 고봉밥을 오목오목 퍼먹으며 우리 형제는 자라났다. 여름은 더웠으며 겨울은 추웠다. 아주 추웠다. 한겨울이 되어도 고드름이 열리지 않는 날씨 탓인가, 요즘 아이들은 너무 푸석푸석하다.

우리가 쌀밥을 퍼먹는 동안 나무들은 흰눈을 퍼먹는단다. 나무가 숟가락을 닮긴 닮았다. 그 숟가락으로 흰눈을 퍼먹으며 나무들이 키가 자란다는 발상. 나무가 자라나는 것은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역발상. 하긴 겨울이 없다면 어찌 나이테가 생길 수 있으랴.

자란다는 건 홍역, 볼거리(항아리손님)를 치르며, 매운 시련을 이기며 한 뼘 두 뼘 어른의 세계로 커 오르는 일. 그럴 동안 세세연년 세월도 강아지 털갈이하듯 자라 오를 것이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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