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큰 목소리와 문화

입력 2007-12-10 07:00:07

유명 음식점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반드시 목소리 큰 사람이 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타고난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말소리를 모기소리로 만들어버리는, 무대에 비유하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모두 조연 이하로 만드는 주인공이 있는 것이다.

그 장소에 전혀 안 어울리는 이야기라도, 남들이 신문·방송·인터넷으로 다 알고 지겨워하는 이야기여도 상관없다. 목소리 큰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만큼 하고야 만다. 또한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예민하게,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 순간부터 그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말은 더 빨라지며 내용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볼일이 끝나기 전에는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가득 찬 음식점은 목소리 큰 사람들이 목소리 크기를 겨루는 전장이 된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다. 최소한 한 사람 이상, 적어도 두 사람과 함께 다닌다. 음식점의 자리는 보통 네 명 단위로 앉게 되어 있어 목소리 큰 사람 하나와 그와 함께 온 사람들 서너 명이 앉기에 적당하다.

목소리 큰 사람과 한자리에 앉은 사람들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먼저 목소리 큰 사람보다는 목소리가 작긴 하지만 딴 자리에 가면 충분히 목소리 큰 사람으로 한몫을 할 사람이 있는데, 그는 목소리 큰 사람이 세 마디 하면 한마디 하는 식으로 장단을 맞추고는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또 그 두 사람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웃거나 박수를 치며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포함된 그룹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목소리 큰 사람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는 못하고 주변에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음식점에서는 음식이 나오면 戰時(전시)가 정전체제로 전환된다. 음식을 다 먹기까지는 아무리 목소리가 큰 사람도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음식점이나 음식점을 둘러싼 이 세상이 그 큰 목소리 때문에 은하수 한가운데로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사람은 먹을 때 먹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이다.

음식을 다 먹고 목소리 큰 사람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목소리 크기를 과시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장소가 유명 음식점이고 한창 바쁜 점심때라 다른 손님들이 자리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마지못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계산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하고 싶은 게 있음에도 마지못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웃어가며 동조를 하던 사람이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사람이 나름대로 목적을 달성했거나 본전을 뽑았기 때문이다.

미안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피던 사람이 "안녕히 가세요."라는 주인의 안도감 섞인 인사에 미안한 기색으로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하는 건 습관이 되어서일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은 대체로 인사에 인색하다. 그 역시 큰 목소리처럼 타고난, 어릴 때부터 몸에 밴 태도이다.

집과 학교에서 자신의 생각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웠으며 그렇게 살아온 것을 이제 와서 어쩔 것인가. 이러고도 이날 이때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한다면?

목소리 크기가 조금만 작았더라면, 조금만 줄일 수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존경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대화의 즐거움, 상대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스스로의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세련되고 성숙한 사회는 타고난 개인의 특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 특성으로 생길 불편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여러 가지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음식점의 경우 가벼운 음악, 큰 목소리의 피해가 자신들의 귀청에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는 적당한 구획, 큰 목소리를 낼 여지를 줄이는 예의바르고 바지런한 종업원의 행동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말이 필요 없게 만드는 맛이 있다. 이런 것이 문명이고 문화이다. 이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면 몰상식한 행동이 끼치는 폐해는 작게 만들 수 있다. 아예 없는 것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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