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닭이 홰치는 소리로 어둠을 밀어내며 하루를 열 듯, 갓난 아기는 우람한 첫울음을 터트리며 삶의 서막을 열게 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강물 같은 세월에 등 떠밀려 온갖 희로애락의 관문들을 거쳐 영원으로 주소를 옮길 때까지 우리는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듯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맺기를 통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겪게 된다.
부모와 자식으로, 반려자로, 스승과 제자로, 친구로 또는 노사 간으로 그리고 이웃으로 만났던 모든 관계들이 한 조각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졸업으로, 퇴직으로 또는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리고 종내는 죽음으로 인해 모두 헤어지고 마는 것이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 중엔 무엇이든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맹물 한잔 건네지 않았지만 내 것 털어 주는 것 없이도 미운 사람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내가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깊은 연(緣)을 맺고 있는 것이니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현생의 업보로 인해 다음 생에서도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세에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는 오로지 지금 내가 그들과 어떤 모래시계를 쌓아 가느냐에 달린 것이리라.
몇 해 전에 개봉된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서 한번 맺은 인연이 먼 길을 돌고 돌아 어떻게 내게로 다시 되돌아오는지를 살펴 본 바 있다. 전생의 일을 알고 싶으면 금생의 내 처지를 돌아보고, 내생의 일을 알고 싶으면 현생에 내가 짓고 있는 선악을 돌아보라고 했다.
우리네 인생 100년만 채워도 장수했다고 정부에서 청려장(靑藜杖)을 수여하며 축하하는 한시적 존재가 아닌가. 누군가와 아웅다웅거리며 쓸데없이 세월을 지워가기만 한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홀홀 단신 무인도에서 한평생 외롭게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수많은 관계에 엮인 채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 로빈슨도 무인도에서 우연히 프라이데이라는 식인종 소년을 만나게 되고 한 마리 개를 만나 일행이 되었지 않았던가.
살다 보면 이 땅이 넓고도 좁다는 말을 할 때가 가끔 있다.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몇 사람만 건너가면 학연·지연 등의 인맥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작은 한 포기의 풀이 단단한 땅을 뚫고 솟아올라 가지를 벌려 잎을 틔우고 또 꽃을 밀어 올려 곁의 꽃나무들과 무성한 숲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듯 우리도 굳은 심지 위에 심은 소중한 인연을 잘 가꾸어 스스로의 인생을 의미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갔으면 한다. 윤미전(시인·대구한의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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