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 제5의 계절, 그 축제 속으로

입력 2007-12-08 08:39:28

바야흐로 '제5의 계절'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고요?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니 TV나 신문마다 온통 후보들의 정치적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요즘 범상치 않은 시간을 보내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이른바 문학도들에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외에 '제5의 계절'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이지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마음은 휑해지고, 누가 건드리지 않아도 곧 울 것만 같이 감정이 극대화됩니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 들면 들수록 어찌 인생은 이리도 만만치 않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인지…. 평소에 책 읽기를 좋아하고, 남보다 좀 더 예민한 의식과 더듬이를 가지고 살다 보니 생각은 깊어지게 되고 나름대로 깨달은 바 적지 않았을 겁니다.

일찍이 피천득 선생은 수필에서 '누구나 다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어쩌면 인생살이의 부대낌에서 앙금처럼 가라앉은 이야기들이 진정성을 담은 훌륭한 예술적 소재가 되는 것만 보더라도 문학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 순간도 원고지 앞에서 고백하듯이, 삶의 기쁨과 아픔을 노래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터, 진정 그런 모습만으로도 당신의 생은 가치 있는 길을 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등단 새내기 때 놀랐던 일 중에 하나가, 많은 문인들이 "신춘문예에 몇 번 낙선했었다."는 것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더군요. 그만큼 내공이 쌓인 문인으로서 피나게 정진했다는 자부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문학은 참으로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과 인간을 사랑함과 동시에 그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가야하는 길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이겠지요. 넘쳐나는 문예지 등단과 작품집을 내면서 바로, 또는 인터넷으로도 작품을 손쉽게(?) 발표하고 심지어는 등단이라는 말조차도 곧 없어질 태세인 이 시대에 그래도 꿋꿋하게 새로운 문재들을 발굴하는 신춘문예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늦깎이로 신춘문예에 응모한 첫해에 당선이 되고 벌써 16년이 흘렀지만 이맘때만 되면 남모르게 마음이 설렌답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여성 스스로도 자기표현에 좀 더 과감해지면서 자아 성취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지요.

그 후로 우후죽순 시인이 양산되었다는 부정적인 비판을 면치 못하기도 했지만, 많은 문학도들에겐 일 년에 단 한 명의 시인과 소설가를 별처럼 떠오르게 하는 신춘문예는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등용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문예지들이 많이 발간되지 않던 그 시절 신춘문예는 기성문인들에게도 화려한 축제였으며 상금도 두둑해서, 얼마간 자긍심을 가지면서 체면도 세워주는 꿈의 무대였지요.

그 영광의 문고리를 잡고 있는 예비 작가들…. 컴퓨터 화면에서 시린 눈 비비며 밤을 새운 아침, 식구들의 눈총은 왜 안 받았겠습니까. 그래도 예술가는 원래 고독한 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남몰래 고통을 즐기기도 하겠지요.

그렇게 써 내려간 작품(?)을 들고 신문에 공지된 날짜와 주소를 확인하며, 마치 거사를 치르듯 자못 정중한 마음으로 우송했을 겁니다. 막상 보내놓고 나면 무슨 미련이 또 그렇게도 남겠는지요. 왠지 맞춤법이 틀린 것 같고,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조바심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말합니다만, 그런 모습 그 오랜 날들의 고뇌와 열정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이룬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한참 잊고 있었는데 문득 저의 신춘문예 당선소감 중에 인용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독일 쾰른의 카니발 '제5의 계절'처럼 당신도 즐거운 문학축제에 동참하기를 바라며, 제 가슴에 새기던 이 한 말씀으로 글을 맺겠습니다.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 약속의 땅을 공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의 절망을 확인하고 그 절망 위에서 삶의 의미를 창출해내는 작업이다. 새로운 눈뜸으로 늘상 출발선상에 서 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강문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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