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맛-살맛-말맛 버무린 현대인 초상화
한 마라토너가 있다. 회사는 구조조정 중이고, 의붓아들은 인터넷에 빠져 있고, 아내의 등쌀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벼랑 끝 사나이다. 그는 달리고 또 달린다. 42.195km를 달린 후 피우는 담배가 꿀맛이다. 흡연은 마라토너에게 치명적이다. 끊으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그가 흡연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안동의 400년 전 무덤에서 나온 '원이 엄마의 편지'를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 '능소화'를 낸 소설가 조두진(매일신문 기자) 씨가 소설집 '마라토너의 흡연'(한겨레출판 펴냄)을 냈다.
차가운 소줏잔을 들이키는 듯한 위트와 유머, 서늘한 허무가 뒤섞인 한바탕 소동극이 7편의 단편에 녹아 있다.
어린 검사와 동행한 경찰 서장이 돈을 요구하는 교통경찰을 만나면서 겪는 곤욕을 그린 '7번 국도', 손톱에는 암이 없다고 투덜대는 의사이야기 '손톱', 손자의 손에 상처를 낸 족제비를 두고 벌어지는 웃지 못할 논쟁 '족제비 재판', 틀니 2개를 해주면 정력의 비법을 가르쳐준다는 영감과 나의 심리전을 그린 '정력가' 등 누구나 한 번쯤 만날 수 있는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팔조령 터널 공사에 귀가 먼 순박한 농투성이 김영부 씨와 두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날들'이나 악다귀같은 딸들 때문에 돼지로 변한 늙은 창녀의 죽음을 그린 '돼지'는 현대인에게 짙은 페이소스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현직기자로서 보고 느낀 사회의 이면 또는 단면을 날카로운 시선과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그의 소설을 읽으면 왼쪽에 입담 좋은 군대 고참, 맞은편에 사회부 신문기자, 오른쪽에 뚝심 좋은 소설가가 밤새 소주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는 소설가 박민규의 추천글처럼 술맛, 살맛, 말맛이 어우러진 소설집이다.
조 씨는 임진왜란 당시 순천 왜교성에 주둔했던 왜군의 눈으로 본 '임진왜란 마지막 1년'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의 창사기념 잔칫날 겪는 하루 이야기를 담은 '게임'(2001)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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