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성이 결정한다" 얼리·슬로아답터 선구자들

입력 2007-12-08 07:44:33

▲ (위로부터)한국리눅스유저그룹 정왕부 부회장, 일본생라면전문점 이재현 사장.
▲ (위로부터)한국리눅스유저그룹 정왕부 부회장, 일본생라면전문점 이재현 사장.

얼리어답터(earlyadopter)는 신제품이 나오면 남들보다 빨리 구입,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때 이런 유의 소비자들은 신제품의 '베타테스터'로 오인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빠르게 진화하는 IT기기의 신소비계층으로 자리잡았다.

그에 반해 슬로어답터(slowadopter)는 얼리어답터에 비해 훨씬 대중적이고 보수적인 소비자들이다. 종래의 대중소비자들보다는 적극적이지만 얼리어답터보다는 대중적인 취향을 가지고 새로운 경험과 서비스에 서서히 관심을 보이는 소비자군이다. 새로운 기기에 둔감한 '기계치'들과는 완전히 구분된다.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일부 제품을 10대후반~20대초반의 얼리어답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얼리어답터소비자들은 그리 두텁지 않다. '마니아'적 소비행태를 보이는 얼리어답터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최근 들어 IT업계는 얼리어답터보다도 슬로어답터식의 소비형태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발 늦게 신제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보다 현명한 소비자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최신 IT기기라도 출시된 지 1년이 지나면 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슬로어답터는 그때 가서 당당하게 검증을 마친 최신기기를 구입, 향유한다.

하긴 요즘 휴대폰 판매장에서 얼리어답터층은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수시로 번호이동을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한번 다른 번호이동한 후 다시 다른 회사로 번호이동을 하려면 6개월이 지나야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번호이동'을 하지 않고 최신 휴대폰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50만 원 이상이 드는데 10대후반~20대 초반에 분포돼 있는 얼리어답터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얼리'와 '슬로'는 IT업계에서만 통용되는 개념이나 소비행태가 아니다. 외식업계에서도 슬로어답터에 주목하고 있다.

▶리눅스마니아

한국리눅스유저그룹(LUG) 부회장을 맡고있는 정왕부(44) 대구경암중 과학교사는 '얼리어답터'다. 우리나라에서 리눅스(Linux)붐이 일기 직전인 2000년 경북대에서 리눅스과정을 수료하고 본격적으로 리눅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공(물리)과 관계없는 리눅스에 빠진 그는 대학원에 진학, 내년 2월에는 박사과정(컴퓨터공학)까지 마치게 됐다. "리눅스를 접하고 나서 제 삶이 많이 변했습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것을 알게됐고 도전과 열정, 생각의 전환 등 리눅스를 통해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니 이제 국가적으로나 사회전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리눅스 보급에 나서는 일과 리눅스 사용을 통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찾는 일에 나서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리눅스'는 컴퓨터의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의 하나로 '소스코드'를 공개하지 않는 윈도와 달리 소스코드가 공개돼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거나 변경, 배포가 가능한 운영체제다. 1991년 리눅스 토발즈가 개발한 리눅스가 전세계에 배포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리눅스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보통신부가 2008년까지 우체국 인터넷플라자 PC 4000대를 리눅스체제로 전환하기로 했고 국방부는 한국형 워게임(Wargame)에 리눅스를 도입했다. 미국에서도 IBM이 차세대슈퍼컴을 리눅스체제로 개발하고 핵무기안전성강화에 리눅스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리눅스사용자(유저)가 7천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리눅스사용자는 '얼리어답터'로 분류되고 있다. 대구에는 약 300명으로 추산된다.

정 교사는 "리눅스는 약간의 초보적인 교육만 받으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라면서 유연성에 따른 선택의 폭 확대와 강력한 보안기능, 신뢰성, 저렴한 비용 등을 리눅스의 장점이라고 꼽았다. 즉 윈도체제의 보안성이나 신뢰성은 낮고 느리지만 리눅스는 운영자의 능력에 따라 강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 정부가 비용절감을 위해 국가기반 OS(운영체제)로 리눅스를 채용하고 우리 국방부가 보안이 요구되는 워게임을 리눅스체제로 도입한 것도 그에 대한 반증이라고 했다.

그는 "리눅스 유저는 여전히 '얼리어답터'"라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국가적으로 초등학교 컴퓨터교육에서부터 리눅스를 가르쳐 다양한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의 다양성과 창조성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식업계에도 슬로어답터

한달여 전 대구 동성로상권에 일본생라면전문점이 개업했다. 일본소설과 만화, 영화 등 일본문화(日流) 붐을 타고 서울과 부산은 물론 대구에도 우후죽순처럼 일본음식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하긴 서울 강남과 홍대입구 등에 생긴 일본정통생라면집은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재현(42) 사장은 "한국에서는 이미 일본생라면전문식당이 검증을 거쳤다고 봅니다."며 "서울과 부산에서는 일본라면집이 자리를 잡았는데 대구에는 아직 일본라면전문식당이 없어서 여기에 주목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외식업계에서는 이 사장과 같은 영업형태를 외식업계의 '슬로어답터'라고 한다.

그는 이미 2000년 '스파게티' 전문점을 열어 한바탕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서울과 부산 등에서 자리잡은 스파게티 식당을 대구에서 연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동성로에서 스파게티 전문점을 열었고 예상대로 식당은 영업이 잘 됐다. 그러나 그는 곧 다른 사업에 재투자했다가 실패했다.

그러던 중 일본을 드나들면서 일본에서 선풍을 일으킨 한류에 이어 한국에서 다시 불기 시작한 일류(日流)바람에 주목했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일본생라면을 선택한 것이다.

"대구사람들도 이제 퓨전일식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본정통라면 맛을 봐야합니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일하고 있던 30년 경력의 후지모토 씨를 주방장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보수적인 대구에서 일본식당이 성공하려면 대구식으로 변한 일본음식이 아니라 제대로 일본맛을 내는 음식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슬로어답터'로서 대구미식가들에게 일본식 정통라면으로 재도전한 그는 산시로와 사야카, 미야코 등 일본인들이 직접 경영하는 대구의 일본식당들과 무한경쟁을 선언한 셈이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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