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 노린 범죄 기승…헤매는 경찰

입력 2007-12-07 09:56:16

방화나 독극물 투입 등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경찰의 수사는 예전 방식이나 '앉은뱅이' 수사만을 답습, 장기 미제의 우려를 낳고 있다. 치정이나 원한, 채무 등 주변 관계에 치중하는 수사 범위가 좁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경우, 초동수사가 미흡하거나 사건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

지난 9월 대구 달서구 상인동 모 아파트에서 발생한 '살충제 우유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 경비원(62)이 경비실로 배달된 살충제 섞인 우유를 마셨다가 입원 치료를 받은 이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우유제조업체를 상대로 생산 과정의 문제점을 추적했지만 별다른 용의점을 찾지 못했다. 특히 경찰은 기름 성분으로 추정하며 "냉장 보관돼 있던 우유팩에 기름이 묻은 장갑이 닿으면 기름 성분이 우유로 스며들 수 있다."며 상식 밖의 논리를 내세웠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사 결과가 살충제 성분으로 나오자 부랴부랴 수사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결국 섣부른 추정 탓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초동수사'에 허점을 드러냈다.

같은 달 23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 모 중고차매매상사에서 일어난 차량 방화 사건도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날 화재로 승용차 2대가 모두 타고 7대가 불에 그슬렸지만 수사는 허술하기만 하다. 경찰은 나무로 된 불쏘시개가 발견되고 차량 내부에서 불이 난 점 등에 미뤄 방화로 보고 있지만 수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경찰은 중고차 매매 과정에서 원한을 품은 누군가의 소행으로 추정할 뿐, 지난 7월 아무 차량에나 불을 지르다 붙잡힌 '달서구 연쇄 차량 방화 사건'의 범인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일 가능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경찰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에 허점을 보이고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시대적인 수사방식에 매달리고 있는 탓이다. 범죄 방식이나 범행 동기에만 초점을 맞춰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범행 동기가 명확하지 않은 범죄의 경우 주변인 탐문 등 발품을 파는 수사 방식으로는 결정적인 제보가 없을 경우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 보다는 '왜' 그랬는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용 계명대 경찰학부 교수는 "일반적으로 살인사건의 경우 대부분은 면식관계에서 일어나지만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한 범죄의 경우 이런 수사법이 통하지 않는다."며 "이 경우 범죄 심리 분석과 프로파일링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경찰은 최근 들어서야 범죄심리분석요원들을 뽑아 관련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범죄자의 심리 등 연쇄범죄의 특성을 파악해 특징적인 부분을 찾아냄으로써 사건의 단초를 풀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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