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보수성 비밀을 찾아
하지만 진실로 걱정스러운 일은 요즘 들어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너희를 충동하고 유혹하는 수상스런 외침들이다. 그들은 이혼의 경력을 무슨 훈장처럼 가슴에 걸고 남성들의 위선과 이기와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폭로하고 그들과 싸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이혼은 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으로 미화된다. 그리고 자못 비장하게 고 외친다. 어쨌거나 굳세고 용기 있는 여인들이지만 그들을 시대의 선구자로 인정하기에는 왠지 망설여진다.(이문열, 부분)
한동안 담론의 대상이 되었던 이문열의 의 한 대목이다.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되었던 이 작품에 대한 내 생각을 여기에 길게 담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만큼 이문열다운 작품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소설에는 이문열의 냄새가 곳곳에 담겨 있다. 이미 많은 논란거리가 될 것임을 진작 알았을 것이고 그것을 노렸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그만큼 이문열은 대중적이다. 소설가는 대중이 주는 자양분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주인공이었던 장 부인과 같은 조선시대의 현모양처를 긍정적으로 그린다고 탓할 수는 없다. 그건 소설가의 자유의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분명 혐의가 있다. 위의 인용문이 실린 소설의 앞부분, '세상의 슬픈 딸들에게'라는 제목을 달고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담은 부분이다. 사실, 그가 지적한 여성 소설가 어느 누구도 이혼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살지 않는다. 그녀들은 대부분 아프다. 왜? 여긴 이문열 같은 남성들이 주류가 되어 살아가는 한국이라는 사회니까.
나도 이문열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다. 그는 분명 대단한 현대판 이야기꾼이다. 을 보면서 이 시대의 퇴락한 영웅의 모습을 보았고, 을 읽으면서 청춘의 한없는 방랑을 되새겼으며, 을 읽으면서 신과 인간에 관련된 본질적 질문을 던졌고, 를 읽으며 그의 해박한 지식과 그것의 소설적 구조화에 감탄했다. 사실, 이문열의 소설이 가지는 관심의 영역은 매우 넓다. 종교 문제와 예술관의 문제에서부터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근대사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재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법 또한 현란하다. 정통적인 리얼리즘의 기법으로부터 대체 역사나 우화의 형식도 사용한다.
아버지의 월북, 외가에서의 삶, 고교 중퇴, 검정고시 합격, 서울대 진학, 고시 실패, 대학 중퇴 등 그의 삶이 지니는 역동성과 대부분의 이문열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보수성은 어쩐지 다소 이질적이다. 그 이유는 그의 고향인 두들마을로 찾아가면 알 수 있다.
조지훈의 주실마을, 오일도의 감천마을을 지나 청송군 진보면과 이웃한 석보면 원리리에 이문열의 고향인 두들마을이 있다. 문화마을로 지정된 탓인지, 아니면 이문열의 후광인지는 모르지만 들어가는 도로가 예쁘게 포장되어 있다.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두들마을은 전통한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을 오른쪽에는 광산문학연구소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광산문학연구소는 이문열이 문학도들을 위해 문학창작과 연구, 토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다. 연구공간으로 사용할 강당, 안채, 그리고 후학들이 오면 묵을 수 있는 사랑채 등으로 이뤄져 있는데 찾아간 날은 아무도 없었다.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정자에 문학기행단 학생과 교사가 함께 모여 진지하게 문학기행 토론회를 가졌다. 에 대한 토론도 오고 갔다. 보수적이고 전통지향적인 이문열의 세계관의 이면에는 바로 이 두들마을이 있다는 대답도 있었다. 문학기행은 그래서 좋다. 아이들은 스스로 읽고 보고 느낀다. 과연 이 아이들이 지금, 또는 미래에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문열의 '선택'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준희(경명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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