矯角殺牛(교각살우).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를 보면서 생각게 되는 말이다.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는 뜻이지만 사전적 풀이로는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더 큰 일을 그르친다'는 의미다.
재벌 기업이 정치가나 관료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정경유착의 폐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떡값이니 당선 축하금이니 이런저런 명목으로 라면박스, 사과상자, 차떼기로 갖다 바쳐왔다. 줄서기를 잘못 짚었거나 줄 밖에 섰던 재벌은 예외 없이 된서리를 맞기도 했다.
5공 시절 공중분해되다시피 했던 국제그룹 회장이 '내 그룹이 해체된 것은 정치자금에 협조 않았기 때문이다'던 피맺힌 항변을 했던 것도 정치권력의 재벌 뜯어먹기에 대한 비판이다. 기업 쪽에서 보면 과거의 권력들은 하이에나 같은 존재였다. 물어뜯기지 않으려면 내 몸 대신 던져줘야 할 먹이를 마련해야 했고 먹이를 마련하려면 뿌려줄 비자금을 만들어야 했다. 편법과 불법이 없이는 그 많은 먹이를 만들어낼 재간이 없으니 기를 쓰고 자금을 만들고 약발을 제대로 받기 위해 인맥과 학맥을 찾고 줄을 찾아 로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3공 때도 재벌은 부정 축재자로 몰렸고 5공 때는 재벌 청문회가 열려 얻어맞았다. 자칭 민주개혁정권이라던 국민의 정부, 문민정부, 참여정부에서도 몸통 숨긴 깃털과 대통령의 아들, 청와대의 왼팔 오른팔들이 줄줄이 돈 먹기에 바빴었다.
그 와중에 돈 끌어댄 재벌회장(현대 정몽헌)이 투신자살하고 건설회사 사장은 강물에 몸을 던졌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은 스스로 대통령에 출마, 뜯기는 데 몸서리난 한을 풀어보려다 낙마하기도 했다. 뜯어 먹히고도 언제나 목숨을 잃거나 더 많이 다치는 쪽은 재벌이나 기업인 쪽이었다.
그러나 기업은 속성상 권력이 손을 벌리지 않아도 맥을 끊어놓고 있으면 왠지 켕긴다. 적어도 권력이 맘만 먹으면 '기업을 도와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방해는 할 수 있다'는 낌새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뿔을 고칠 때마다 몸을 다쳐도 계속 로비하고 보험을 든다.
大選(대선) 같은 권력 교체 시기가 다가오면 그런 불안은 더 커지고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줄을 선다.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말들이야 과장된 표현이라 할 수도 있다. 다만 '삼성 수사가 재벌 총수 처벌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되고 450억 달러씩 수출하는 삼성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냐'고 했다는 여당후보의 말처럼 가급적 흠집이 덜 날수록 대표적 글로벌 기업의 대외 信認度(신인도) 등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삼성의 비자금 축적이 불법적인 수단에 의해 조성됐다면 뜯기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保身策(보신책)이라는 논리로 면죄할 수는 없다.
그런 고쳐야 할 관행과 폐습의 고리는 언젠가는 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경영 풍토와 그런 깨끗한 기업으로 거듭나야 진정한 글로벌 경제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자랑스러운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비자금과 로비라는 비뚤어진 뿔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삼성그룹 수사는 그런 분명한 대승적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잘못된 뿔은 고치되 제대로 고치려면 뜯기는 소와 함께 뜯어가는 하이에나들의 관행을 끊는 제도적, 윤리적 장치를 만드는 쪽으로도 가야한다.
어떤 권력도 경제 대통령도 재벌과 기업이 위축되고 주눅 들고 반기업 정서에 좌절해 투자를 피하고 고용을 늘리지 않고 해외 이전에 구조조정 감원만 해대면 어떤 공약실천도 개발계획도 소득 3만 달러의 꿈도 공염불이 되기 쉽다. 뿔을 지혜롭게 고쳐야 소도 부지런히 더 일하고 살이 찐다. 법질서 못잖게 중용과 조화도 중요한 것이다. 소(기업)도 살려내고 뿔도 고치는 검찰의 수완을 기다려 보자.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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