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조그만 참회록

입력 2007-12-03 07:00:00

12월이 되면 왜 이리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바빠지는지요! 시간도 뛰어가고 마음도 뛰어가는 듯 숨이 차옵니다.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반성도 해야겠고, 안팎으로 주변 정리도 해야겠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며 조그만 선물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그만 참회록을 적어 친지들과 나누는 것 또한 아름답고 소박한 선물이라 여겨봅니다.

늘 새로운 선물로 다시 오는 시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 없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너무 많이 하고, 잠시 낼 수 있는 시간조차 내어 주질 않아 가족 친지 이웃을 서운하게 한 일이 많았음을 반성합니다. 어쩌면 저에겐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을 때가 더 많았기에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늘 무슨 이야길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지 않고 건성으로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나만의 생각에 빠져 나만의 방식으로 의견을 주었기에 상대방을 더욱 외롭게 만들었음을 반성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아주 사소한 일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을 멀리 하고 우울함과 가까이 지냈으며, 자주 침울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다른 사람들까지 힘들고 무겁게 만들었음을 반성합니다. 삶에 대해 희망찬 의욕보다 의기소침한 태도로 웃음을 잃었던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남을 곧잘 비난했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일을 사실인 양 단정적으로 남에게 전하기도 했던 비겁함과 경솔함을 반성합니다. 판단은 보류할수록 좋고 검증되지 않은 말을 전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잠시 잊고 살았던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늘상 나만의 감정에 빠져 다른 이의 기쁨이나 슬픔에 함께하는 너그러움이 부족했음을 반성합니다. 다른 이의 슬픔에 동참해 울어주고 다른 이의 기쁨에 함께 웃어주는 넓은 사랑보다는 자기중심적인 방향으로 치우치는 나의 좁은 사랑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나를 힘들게 한 이들의 잘못을 용서한다고 말은 쉽게 하였지만, 실제로는 온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내내 마음 속에 떠올리며 미움과 노여움을 되새김하였음을 반성합니다. 용서를 통한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하고 사라지지 않는 미움을 한 켠에 품어 두곤 하는 나의 옹졸함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크게 작게, 알게 모르게 내가 받은 다양한 종류의 은혜에 대하여 좀 더 충분히 좀 더 구체적으로 감사하지 못하였음을 반성합니다. 감사를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자주 불평하며 복에 겨운 투정을 한 적이 많은 내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잘 지키겠다고 한 친지들과의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다시 만나요!' '기도할게요!' 하는 약속조차 잘 챙기지 못하고도 늘 변명하고 합리화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나 자신의 죄와 잘못을 좀 더 예민하게 성찰하는 노력이 부족했으며 잘못된 부분들에 대하여는 좀 더 깊이 뉘우치고 용서 청하지 않은 무례함을 반성합니다. 죄가 많으면서도 죄를 감추고 싶어하는 위선자인 내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적어가려니 끝이 없습니다. 살면 살수록 장점이 많은 나보다 단점이 많은 나 자신을 더 많이 보게 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하렵니다. 상상 속에 있는 완전한 나보다 결점 투성이의 지금 내 모습을 더 사랑하며 현재진행형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오늘의 내가 되고 싶습니다. 삶의 길에서 수고 많았던 나의 벗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떤 생각'이란 제 시를 읽어 드립니다.

'산 너머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 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이해인 수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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