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은 산에 중독 된 사나이다. 여덟 살에 첫 등반을 했다. 이후 등반은 그의 인생 전부가 되었다. 오로지 다음 원정을 위해 돈을 벌었고, 빌렸다. 어느 날 주변사람들의 안정적인 생활이 보였다. 서서히 자신의 생활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등반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결혼도 했다. 그러나 등반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신 위험한 곳을 피해 다소 안전한(?) 등반길을 찾는다. 변화된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위스키 병을 입에 달고 살던 알코올 중독자가 토요일 저녁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키는 평범한 사람으로 바뀐 것 같다." 등반에 대한 자신의 야망은 글 쓰는 일로 대신 했다. 이 책의 저자 '존 크라카우거'의 이야기다.
그가 산을 둘러싼 12가지 이야기를 묶었다. 일반적인 등반 관련 책은 등반가가 주인공이다. 등반가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오른다. 그 순간 역경은 아름다운 시련이 된다. 인간승리의 감동적인 드라마가 된다. 그런데 존 크라카우거의 이 책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등반가 뿐 아니라 산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등반의 낭만성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발디즈의 빙벽' 편에 등장하는 이본 취나드. 그는 등반 빙벽 등반가로 유명한 한편 혁신적인 장비를 직접 만들었다. 그가 개발한 장비는 빙벽 등반의 제약을 없앴다. 전 세계적으로 팔렸다. 그러나 그는 고양이 사료 통조림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50세가 넘은 현재 그는 연매출 7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기업을 갖고 있다. 장비 판매 수익이 아닌 아웃도어 의류로 돈을 벌었다. 여전히 빙벽 타기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별로 돈이 안되는(?)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해마다 천 명에 달하는 등반가들을 실어 나르는 조종사들은 '탈키트나 조종사들' 편에서 만날 수 있다. 조종사들은 등반가 못지않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예기치 못한 하강기류에 휩쓸리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단 한번에 착륙을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날아오르기 힘들다. 조종사 '기팅'은 알래스카에서 조난자 구조에 나선다. 비행할 수 없을 만큼 퍼붓는 눈 속을 비행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오로지 경험만으로, 감각만으로 비행한다. 그리고 구조에 성공한다.
최고의 수학자 '존 길'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패턴을 분석하고 풀어내려는 본능, 수학과 볼더링(bouldering 줄 없이 올라가는 암벽등반)은 연관되어 있죠." 그에게 가파른 수직벽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그는 수직고도 9미터 이하의 바위들만 등반한다. 전통적인 등반가들은 그를 비난했다. 높은 곳을 오를 수 없는 '겁쟁이'. 그는 주류들의 생각이 얼마나 억압적인 힘인가를 알게된다. 그렇지만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새롭고 실험적인 등반을 원했다. 주류들의 생각에 동화되지 않은 사고의 자유로움이 그를 최고의 등반가로 만들었다. 헤르만 불, 라인홀트 메스너와 같은 위대한 등반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위험은 사람을 중독시키는 것 같아요. 제가 줄을 묶지 않고 매우 위험한 상황 아래에서 등반하고 있을 때 제 자신이 다른 의식 상태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분은 상쾌해지고 강렬한 열정이 마구 샘솟습니다. 동시에 제 내면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매우 편안해져요" 존 길의 이 말은 "그들은 왜 오늘도 산과 싸우는가"에 대한 답이 된다.
저자는 열정만으로 등반했을 경우 만나게 될 위험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텐트에 붙박이가 되어' 편에는 기상악화로 고립된 경우 겪게 되는 일을 적었다. 지루함, 권태감, 그리고 서서히 찾아오는 자기 모멸감. 그러나 그 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다. 1967년 알래스카의 리빌레이션 산의 초등을 시도한 원정대는 총 52일 중 40여일을 폭풍우 속에 갇혀있었다. 'K2에서 보낸 끔찍한 여름'편에는 동료의 죽음을 차례로 맞는 7명의 등반가들이 등장한다. 뒤를 따르던 동료가 어느 순간 수천 미터 아래로 추락한다. 결국 2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밖에 전 세계적인 산악도시로 자리잡은 프랑스의 '샤모니', 협곡탐사가 '릭 피셔' 등 다양한 이야기가 '산'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다. 이렇게 산은 상황에 따라 인물에 따라 각기 다른 '선물'을 준다. 그 선물은 위험한 유혹이며, 끊을 수 없는 중독이다. 산에 중독된 사람들은 산을 버릴 수 없는 게 아니라 벗어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무엇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최고의 자리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또 한편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함정이다. 그러나 만일 산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한번 빠져들기 시작했다면 제대로 중독되어 보는 건 어떨까?
존 크라카우어는…
전미산악연맹 문학상 수상. 전미정기간행물시상식의 최종 후보 지명. '아웃사이드'지 객원 편집자. 잡지·신문에 기고. 현재 워싱턴 주 시애들 거주. 저서 '천국의 깃발 아래' '황무지 속으로' '희박한 공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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