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의 실현 분명한데 왜 배신감이 들까?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도 수많은 공익제보자들이 있었다. 굵직한 내부고발 사건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폭로했고, 이로 인해 법적 제도적인 보완도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공익제보자에 대한 인식은 어둡다. 그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한쪽에서는 '배신자', '변절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사람들은 공익제보자들에게 왜 그렇게 '까칠한' 태도를 보일까? 그들의 헌신적인 용기로 사회 정의가 실현된다는데 대해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마음속 깊은곳에서는 왠지 모를 반감이 꼬리를 쳐드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 그는 의인인가?
사람관리 잘 하기로 소문난 삼성그룹이 갑자기 '폭격'을 당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느닷없는 폭로로 안팎으로 뒤숭숭한 상황. 급기야 국회에서 '삼성 특검법'이 통과되면서 삼성그룹의 앞날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한 때 범죄행위 가담자였지만 '나 역시 죄값을 받겠다'며 삼성의 비자금과 불법 경영권 승계,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을 폭로한 김용철씨는 요즘 언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최고의 스타다. 하지만 그를 '실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는 과연 공익제보자인가, 악의적 폭로자일 뿐인가?
김용철 씨는 그 고발의 형식을 봤을 때 공익제보자(내부고발자)로 볼 수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하기는 뭔가 꺼림칙하다는 반응이다. 그가 폭로하게 된 배경과 의도에 먼저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강모(43)씨는 "7년 동안 100억이라는 거액을 받으면서 챙길 것 다 챙기고 더 얻을 것이 없어지자 비로소 폭로를 한 것은 아무리 봐도 모양새가 나쁘다."고 지적했고, 김모(48)씨는 "남자가 의리가 있어야지 그렇게 자신이 속했던 조직을 배신할 수 있냐"고 비아냥거렸다.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옹호론도 김용철씨를 삐딱하게 해석하는 한 요인이다. 조모(41)씨는 "삼성이라는 초거대기업이 활동하는데는 어쩔수 없이 비자금도 좀 필요했지 않겠느냐."며 "세계적으로 한국의 이름을 알리고 제품을 팔아 나라 경제에 기여했으면 그걸로 된 것 아니냐."고 반론을 펼쳤다.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데 일조했다'는 시각도 있다. 김헌동(35)씨는 "본질을 보기 보다는 김용철씨에 대한 인신공격만이 난무하기 때문에 여론이 자꾸 왜곡되고 있는 것"이라며 "삼성이라는 기업이 재벌 경영체제의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고 각종 탈법행위를 저질렀는가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며, 이를 제보한 김용철 씨는 의도야 어떻든 간에 분명히 사회정의에 일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익제보자에 대한 시선
공익제보자. 이성적으로는 그들이 사회 정의에 기여하는 측면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감성적으로는 괜시리 꼬투리를 잡고싶은 심리가 한발 앞선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알수 없는 일이지만 이중적이다 못해 상당히 복잡다단한 심리가 표출되는 것을 어쩌지 못한다.
이에 대해 공익변호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정한영 변호사는 "강한 도덕심을 가진 사람에 대한 막연한 질투심 아니겠냐."고 했다. 미국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도덕심이 강한 후보에게는 투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나보다 도덕심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겉으로는 지지를 하면서도 남모를 질투심을 가지는게 사람의 본성인가보다."며 "공익제보자에게 너는 얼마나 깨끗한 사람이길래 남을 나무라냐는 삐딱한 의식이 내재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공익제보가 있을 때 그 비리의 본질을 파악하기보다는 제보자 색출에 앞장서는 우리의 감정적 대응방식도 문제다. 김모(39)씨는 "사내에서 공익제보자에게 동조하는 의견을 내비쳤을 때 '나 역시 고발자 중 한 명으로 비춰지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공익제보자를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김 씨는 "국민 중 상당수는 잠재적으로 반공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 뿌리깊은 반공의식이 조직에 반하는 행동을 불신하고 감시하는 형태로 표출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밝혔다. 제보자에 대한 색출과 응징이 선행되다보니 상당수의 공익제보자들의 정의감보다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심 등으로 뒤틀려보이게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재현(29)씨는 "처음에는 '정의감'으로 시작했을지라도 계속적인 회유와 압박에 시달리다보면 악에 받힐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않느냐."며 "우리가 공익제보자들의 의도를 왜곡시켜놓고 그 이유를 다시 공익제보자에게 돌리는 것은 이상한 심리"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보니 공익제보를 했던 사람들은 후회막급일 뿐이다. 2005년 한국행정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패 신고를 한 공무원들 중 43.3%가 '신고한 것을 후회했다'고 답했으며, 50%가 '부패행위를 보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지 말라고 권하겠다'고 했다. '신고 후 징계와 인사조치 등 유·무형의 보복을 받았다'는 응답도 66.7%에 달했다. 당연히 '신고의식'에서는 후진국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직장인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동료의 사내 부정행위에 대해 '신고하겠다'는 직장인은 5명중 1명(21%)에 불과했다. 대신 '개인적으로 주의만 주겠다'(70.7%)거나 '모르는 척 하겠다'(8.3%)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공익제보로 만들어낸 밝은 사회
2006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던 영화 '괴물'을 떠올려보자. 이 영화는 주한미군부대 영안실에서 독극물인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으로 몰래 버리면서 생태계 변이를 일으켜 '괴물'이 만들어졌다는 시나리오다. 이는 사실에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다. 2000년 주한미군 영내에서 작업하던 인부의 고발로 독극물 무단 방류가 세상에 알려졌고, 미국의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몇년간의 씨름을 거쳐 환경 조항을 삽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문옥 전 감사관은 1990년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실태와 상부의 지시로 감사가 중단된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고발했다. 덕분에 재벌의 불법 재산증식, 재벌과 세무당국의 유착이 낱낱이 알려졌다. 또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가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 김수환 추기경 등 1천300여명의 민간인에 대해 불법 사찰활동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고발했다. 이로 인해 국방부 장관과 보안사령관이 해임됐다.
이지문 중위는 군의 부재자 투표 부정을 근절시킨 장본인이다. 1992년 3월 ROTC로 근무중이던 이지문 중위는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 군부재자 투표과정에서 공개투표·대리투표 행위와 여당지지 정신교육이 있었다고 기자회견을 했고, 이후 200여명의 현역 군인들의 익명 제보가 이어지게 되는 단초를 만들었다. 1992년 한준수 전 충남·연기 군수는 여당의 관권선거를 고발했으며, 1996년 감사원에 근무했던 현준희 씨는 효산그룹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비리를 고발했다가 현재도 재판이 진행중에 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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