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틀과 문짝의 벌어진 틈새를 집중 공격하던 동장군이 드디어 문지방을 넘습니다. 겁먹은 문풍지가 괴성을 지르며 바들거립니다. 변변한 옷가지조차 없는 아이들은 물 빠진 논바닥의 올챙이 마냥 구들장에 배를 붙이고 엎드립니다. 달랑 한 장뿐인 이불을 둘러싸고 옥신각신, 밀고 당기는 전쟁을 벌입니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넘쳐나던 시절, 재잘거림이 군불이 되어 아이들을 데웁니다.
쇠죽 끓일 때 달군 방바닥이 식고 아침햇살이 눅어 온기를 품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경칩 맞은 개구리가 됩니다. 삼삼오오 무리지은 아이들의 행렬이 당수나무 아래로 향합니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마냥 맹목적인 지향입니다.
방학, 그야말로 완전한 방학(放學)입니다. 배움을 책으로부터 사회로 그리고 세상으로 확대시키는 진정한 방학입니다. '별 따기'가 시작됩니다. 먼저 손바닥 뒤집기 게임을 통해 손바닥을 내민 편과 손등을 내민 편으로 편 가르기를 합니다. 한꺼번에 손을 내밀어 결정하기 때문에 가장 공평한 민주주의 방식입니다. 편 가르기가 끝나면 각 편마다 대장을 선출하고 서열을 정합니다. 서열은 나이, 달리기, 꾀 등의 요소들이 고려됩니다. 각 편당 12명, 별 한 개에서 별 12개까지의 서열이 정해집니다. 별 12개는 대장입니다.
놀이가 시작되면 양편 인원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동네 전역으로 흩어집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짝 지은 무리들이 동네를 누비고 다니면서 상대편 무리를 뒤쫓는 것입니다. 이리저리 쏘아 다니다가 상대편을 찾으면 터치를 합니다. 터치가 된 상대는 서로가 서열을 밝히고 별의 합을 계산합니다. 별의 합이 많은 편이 이기게 되는데, 이길 경우 진편의 인원을 흡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별이 12개인 대장도 혼자서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습니다. 별 6개, 7개의 상대방 두 명이 손을 잡고 있으면 지기 때문입니다.
작전이 중요합니다. 너무 많은 인원이 손을 잡고 움직이면 기동력이 떨어져 상대를 보고도 쫓아 갈 수 없습니다. 인원이 너무 적으면 별의 숫자가 적어 상대를 제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리거나 달리기를 못하는 인원을 낮은 서열에 편성해서 짚더미나 찾기 어려운 은신처에 숨겨둡니다. 적에게 가면 불리하고, 아군에게 있으면 거추장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낮은 서열도 굉장히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별 1개 정도가 적은 상대가 추격해올 경우 낮은 서열이 은신한 곳으로 상대를 유인하여 합동으로 제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위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시작된 놀이는 밤까지 계속됩니다. 그리고 가끔씩 놀이가 끝나도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난리가 나기도 합니다. "너 어디에 있었니?" "형이 숨어서 꼼짝하지 말라고 했잖아!" 숨겨놓은 아이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것입니다. 한참을 자다가 깨어보니 하늘엔 별만 총총, 진짜 별을 딴 녀석은 그 아이 하나뿐입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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