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죽음 앞이지만 희망 버리지 않을래요"

입력 2007-11-28 09:34:29

급성백혈병 투병 이재훈씨

▲ 급성백혈병으로 대구 한 병원 무균병동에 입원해 있는 고아 이재훈(가명) 씨를 간호사가 돌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급성백혈병으로 대구 한 병원 무균병동에 입원해 있는 고아 이재훈(가명) 씨를 간호사가 돌보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고아예요. 고아라 딱히 수술비 구할 방법이 없나봐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중증 환자만 담당하는 수간호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무거웠다. 수간호사는 "보호자가 없어 그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간단히 나이와 이름, 주소를 확인한 후 약속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한동안 '고아'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백혈병에 걸린 청년 이재훈(가명) 씨를 대구 한 병원에서 만났다. 삶의 버팀목인 부모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그에게 지난 삶을 조목조목 캐물어야 하는 현실이 잔인했다. 곪아 터진 상처에 또다시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무균병실을 들어서는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는 암담한 현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사회 물을 먹은 지 벌써 10년이 됐다."며 기자의 마음을 헤아리듯 환하게 웃으며, 때론 고민에 잠긴 채 지난 삶을 담담히 풀어냈다.

"큰 체구에 화통한 성격이셨던 아버지는 유난히 술을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술을 마시면 꼭 노름을 하셨어요. 혼자 횟집을 운영하며 우리 형제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하셨을 거예요. 결국 참다 못한 어머니는 제가 열두 살 때 이혼을 하셨지요. 그후 아버지는 분을 못 이겼는지 더욱 자주 술을 마셨어요. 끝없이 어머니 흉을 늘어놓는 아버지가 그때는 참 미웠는데···."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회한이 밀려드는 듯했다. "참 여린 분이셨어요. 아마 그래서 감정 주체가 힘들었고 술의 힘을 빌렸던 것 같아요. 좀 더 잘 대해주지 못한 것이 지금은 후회가 되네요."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헤어진 후 4년 만에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도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요. 그때가 열여섯 살이었네요. 동생도 학교를 그만두고 기숙사 딸린 공장에 취업했어요." 그 후 10년간 그는 단 한 번도 일을 그만둔 적이 없었다. 고깃집 서빙, 편의점 아르바이트, 공사장 막일, 옷가게 점원 닥치는 대로 일하며 미래를 설계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친구와 함께 월 10만 원의 모텔 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가 그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3월 고단했던 그의 삶에 느닷없이 병마가 찾아들었다.

"새벽 3시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왔어요. 이틀 동안 앓아 누웠지요. 마침 포항에서 공장에 다니는 동생이 찾아와 병원에 가자고 해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섰는데···." 동생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찾은 병원에선 뜻밖의 진단이 내려졌다. 골수이형성증후군. 백혈병 전 단계로 치료를 제때 받지 않으면 혈액 내 악성종양이 퍼지는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아니 골수이식비 2천만 원이 없어 입원할 수 없었다. 당장 생계가 막막했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흘렀고 결국 그는 지난 9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자연스레 나을 것이라 믿었어요. 자만심이었나봐요. 더이상 제게 찾아올 고통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열심히 일하면 다 잘될 것이라 믿었는데, 허탈한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도와주시겠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죽음 앞에 서 있는 그는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세상을 등진 아버지의 도움을 기다리는 그의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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