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의별 記念日(기념일)이 다 있다. 초콜릿 주는 밸런타인데이, 사탕 주는 화이트데이는 기본이고 두통의 날, 은행강도의 날, 알레르기의 날, 바보의 날, 목욕탕의 날, 배반의 날에다 만세삼창의 날도 있다. 여름철엔 모기의 날, 추운 겨울엔 따끈따끈한 중국 만두의 날, 식욕 도는 가을엔 초밥의 날, 콩나물의 날, 치즈의 날까지 있다.
일주일 후 노무현 정부는 말도 안 되는 기념일을 만들기 위한 공청회를 연다고 한다. 이른바 '6'15 공동선언 기념일 제정'에 관한 공청회다. 7년 전 DJ가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한 날을 제헌절이나 광복절 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겠다는 거다.
국가기념일은 특정한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이 전 국민의 절대적 공감 아래 두고두고 해마다 기리고 기억할 만한 국가적 가치와 의의가 있을 때 정하는 것이 도리다. 보수니 좌파니 친북 반북을 떠나 다같이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자. 6'15 공동선언은 남북 간의 평화적인 공동번영과 민족 공영을 지향하자는 의지와 노력을 확인한 말 그대로의 '宣言(선언)'이다.
대한민국이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20045호)에 의해 지정한 기념일은 40개 정도. 그러나 지금까지 특정 조약 채택일이나 선언, 합의문 등을 끌어다 기념일로 정한 경우는 없다.
노 정부의 논리대로 6'15 선언이 남북 간의 통일 번영을 위한 정치적 계기를 만든 것이니 기념일을 제정할 만하다고 한다면 차라리 1972년 박정희 대통령 당시 남북이 처음 평화공존을 약속했던 7'4 공동성명일을 기념일로 지정해야 더 타당하다.
6'15 공동선언은 선언 이후 저질러진 남북관계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실패한 선언이고 부분적으로는 파기된 선언이나 다름없다. 선언 후 서해교전으로 동족인 선언 당사국의 장병을 살상하고 안보위협요소인 핵무장을 막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전향 빨치산 등은 풀어주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은 지지부진 미뤄지는 등 선언의 정신이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다. 따라서 다수 국민들은 6'15 공동선언에 대해 실망과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기념일 제정에는 더더욱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정권은 기어이 국민의 뜻과는 거꾸로 6'15 선언일을 국가기념일로까지 만들려 하고 있다. 비꼬자는 게 아니라 풍자하자면 자유민주체제로서의 평화통일을 바라는 남한 국민들로서는 이 정부 들어 끊임없이 들이대는 同族愛(동족애) 이상의 과도한 좌파적 친북성향에 알레르기가 돋는 '알레르기의 날'을 기념해야 할 판이다. 북한으로서야 노 정부가 기념일로 만들어 주면 자신들의 연방제 노선과 통일전략이 더 확실히 먹혀들어가니 말 그대로 '만세삼창의 날'이 될지 모른다.
'가루의 날'과 '아이스크림의 날'도 있다지만 6'15기념일을 억지로 만든다 해도 국민의 안보의식과 자유통일 역량이 가루처럼 날아가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무슨 수를 쓰던 기념일만 만들어 놓고 분위기 잡아놓으면 친북 분위기가 뜰 것으로 계산한다면 그쪽이야말로 '바보의 날' 주인공들이 될 뿐이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이번 공청회가 가끔씩 보아온 이상한 공청회처럼 코드 맞는 교수 몇 명 앉히고 반대쪽 사람 몇몇 들러리로 앉혀 어물쩍 통과된 양 밀어붙이거나 혹시나 결론이 잘못 나올 듯싶으면 책상 엎고 토론자 멱살 잡아 판 깨는 식으로 민심을 배반한다면 다음주 월요일은 '배반의 날'이 될 것이다.
물론 국가기념일이 많아서 나쁠 건 없다. 그만큼 온 국민이 자축하고 기리고 받들 만한 좋은 사연, 멋진 사건, 자랑스러운 역사가 많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일방적인 정치적 이념에 빠져 다 끝나가는 시한부 정권이 국민이 원하지 않는 기념일을 억지로 대못 박듯 제멋대로 만드는 것은 정치도의가 아니다. 거듭 단언컨대 6'15 선언 기념일 제정은 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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