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꾸준히 오래 하면 숙련"
기계 앞에서 인간은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기계가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갈수록 기계화·자동화돼가고 있는 사회에서 숙련된 생활의 달인(達人) 2명을 만났다. 두 달인은 "무슨 일이든지 꾸준하게 오래 하다 보면 숙련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달-김갑석 대구 수성우체국 팀장
지난 21일 오후 5시 대구 수성우체국 2층 우편물작업장. 100여 명의 정보통신원(집배원)들이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김갑석(55) 팀장은 단연 돋보인다. 주소지의 대번호와 소번호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김 팀장은 눈은 우편물을 보고 있지만 손에 든 우편물은 어느새 우편물구분대에 쏙 들어갔다. 김 씨는 입사한 뒤부터 고산지역의 우편물을 돌렸다. 고산지역은 손바닥 보듯이 훤하다. 20년 전 이사갔던 사람의 우편물도 이름만 보면 골라낼 정도이다. 이런 우편물은 반송함으로 넣는다.
남들보다 빠른 것은 요령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편지를 바로 잡지만 그는 거꾸로 잡는다. 최대한 작업능률을 올리기 위해서다. 필요없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군더더기 행동은 하지 않는다. 배달물을 오토바이에 실을 때도 번지의 동선에 따라 담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 번지수에 따라 우편물 구분을 정확하게 해야 되돌아가는 수고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경력은 28년. 강산이 세 번 바뀔 만큼의 경력을 자랑한다. 그는 1970년 말 대구 고산우체국에 집배원으로 입사했다. 첫 월급이 4만 6천 원에 불과했지만 당시 집배원의 인기는 좋았다. 김 팀장이 담당했던 고산지역에는 직물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공장에 다니는 아가씨들이 고향 소식이 담긴 편지를 전달해 주는 김 팀장을 특히 반겼다고 한다.
"예전엔 우편물 대부분이 서신이었습니다. 연애 및 안부편지 등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고지서가 대부분이어서 사람들이 별로 반기지 않습니다."
예전엔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남편의 편지를 가져다주면 털스웨터를 선물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대별로 우편물도 변했다. 1970년대에는 군대 간 자녀, 가족, 친지 간의 서신이 전부였고, 1980년대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 간 사람들의 서신이 많았다. 1990년대부터 고지서와 각종 홍보우편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서신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고지서와 광고홍보물이다. 그는 "요즘엔 군대 간 사람도 편지를 쓰지 않는다."면서 "서신이 차지했던 비중은 서서히 택배와 소포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정년을 3년 남긴 김 팀장은 우편물 배달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자동화되더라도 기계가 우편물을 배달할 수는 없다."면서 "정보통신원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포장-황재현 두리포장센터 대표
"와! 신기하다. 포장하는 것이 거의 예술이에요."
지난 19일 오전 11시쯤 대구우체국 안에 있는 두리포장센터. 황재현(45) 대표가 한 고객이 맡긴 한복의 택배 포장을 하고 있었다. 한복을 자로 재더니 골판지를 꺼내 송곳으로 점을 찍고 칼로 오린다. 순식간에 한복 크기에 맞는 상자가 만들어진다. 한치의 오차도 없다. 비닐테이프를 붙이고 노끈으로 묶고 포장을 마무리했다. 포장을 맡긴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황 대표의 작업장에는 작업대와 85㎝ 자, 재단용 가위, 테이프, 골판지, 알루미늄 캔이 있다. 이것만 있으면 황 대표가 포장하지 못하는 물건은 없다. 한 개를 포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을 채 넘지 않는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습니다. 한가지 일을 오래 한 결과죠. 손님들이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해야 합니다."
황 대표가 우체국에서 포장을 한 지는 15년이 넘었다. 황 대표에게 포장을 맡기는 사람은 주로 단골고객이다. 김경자(69·여·경산시 진량읍) 씨는 집에서 두 시간 걸리지만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면서도 황 대표를 찾는다. 이날 김 씨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시누이에게 김치와 참기름을 부치기 위해 찾았다. 김 씨는 "자기 물건처럼 꼼꼼하게 포장해주기 때문에 멀지만 이곳을 꼭 찾는다."고 했다.
황 대표는 포장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글씨에 서툰 어르신들을 위해 주소를 대필해주고 짐을 직접 들어서 우편서비스 창구까지 옮겨주기도 한다. 단골 손님과 농담을 나누면서도 포장하는 손길은 흐트러짐이 없다. 큰 골판지가 순식간에 상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사가 나오고 테이프 뜯는 소리는 경쾌하다. 임춘옥(54·여·대구시 중구 태전동) 씨는 "울산에 있는 아들에게 옷을 보내기 위해 포장을 부탁했다."면서 "친절하고 튼튼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항상 찾는다."고 했다.
황 대표가 하루 평균 포장하는 물건은 50~60건. 요즘이 가장 바쁘다. 김장철이 다가오면서 김치를 부치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포장을 하는 데 물건의 크기가 크든 작든 상관없다. 길이 2m가 넘는 병풍과 유리액자 포장은 골판지 두 개를 덧대면 거뜬히 포장한다. 만년필과 반지, 열쇠 등 작은 물건의 포장은 더 쉽다.
"요즘은 우체국에서 박스를 무료로 제공하거나 판매하기 때문에 물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쉽습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손님도 갈수록 줄고 있습니다."
그는 "나이 드신 손님이 보낸 물건을 자식들이 잘 받았다면서 칭찬할 때 가장 기쁘다."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 것"이라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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