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살이 어떻게 할까?

입력 2007-11-22 07:45:20

전원생활 기대감만큼 이웃과 융화도 고민하라

전원주택은 무엇보다 도시를 탈출한 전원생활이라는 이점에 이웃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전원생활은 생각지 못한 여러 복병들로 마음의 상처만 부를 수 있다.

◆자연 누리고 이웃 얻고

영천 청통면에는 '교수촌길'로 이름지어진 길이 있다. 대평리 교수촌으로 들어가는 1km 마을 길을 청통면이 이렇게 명명했다. 외지에서 온 이방인들이 자신을 낮추고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려 융화된 데 따른 감사의 표시다.

대구와 경산지역 교수들이 마음을 모아 조성한 영천 청통면 대평리 '교수촌'. 2000년 대구대 배일섭(53·행정학과) 교수가 마을 남쪽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지어 이사한 뒤 마을 인심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지금은 이상복(57·대구대 유아교육과) 교수, 조영자(49·대구사이버대 사회복지과) 교수 등 7가구로 늘었다.

이들은 마을 어르신 등 주민들의 각종 민원대행은 물론, 마을 인근에 주민들이 원치 않던 한전 변전소가 들어올 때는 내 일처럼 반대투쟁도 함께했다. 또 마을 앞 저수지인 '풍락지를 사랑하는 시민들의 모임(풍시모)'를 만들어 환경정화 활동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에 답이라도 하듯 주민들은 교수들에게 텃밭 가꾸는 방법, 거름 만드는 방법 등 농사짓는 법을 조언해주고 마을 사람으로 인정했다.

풍광 좋은 곳에 집을 짓고 나홀로 전원생활을 했던 것에서 벗어나 단지형 전원주택, 동호인끼리 모여 사는 전원주택이 늘어나는 것도 전원주택이 주는 이익을 빠트리지 말자는 생각에서다.

대구·경북에서는 최초로 단지형 전원주택으로 조성된 경산 와촌의 '유창 전원마을'. 1998년부터 분양을 해 현재 37가구가 살고 있다. 주택업체가 조성한 부지에 입주자들 요구대로 건축되었다. 방범 등 주택관리는 공동으로 한다.

5년 전 이 마을에 입주한 최유복 씨는 "교수, 의사, 변호사, 기업체 대표 등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웃 동네와도 조금 떨어져 있어 공동체 속에서의 독립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친지나 직장 동료, 비슷한 직업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동호인 전원주택도 늘고 있다. 영천시 청통면 대학촌은 교수 7명이 토지 매입과 농지전용 단계에서부터 힘을 합쳤고, 모두 스틸하우스로 주택을 건립했다. 영천의 다른 지역에는 교수들이 통나무로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며, 경산의 갑제동과 여천동 등 영남대 주변과 3개 대학이 소재한 하양읍 등지에도 주로 교수들이 모여 사는 전원주택단지들이 들어섰다.

그렇다고 개별 전원주택의 장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달빛이 시리다는 느낌, 별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느낌…. 이런 기분이 좋아서 입주했고, 또 바라던 것을 얻었지요."

청도 각북면 남산리에 자리잡은 김모(53·여) 씨는 전원생활 덕분에 자연과 함께 이웃도 얻었다고 말했다.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초청장이 오는데 이때 돈만 삐죽 전달하기보다는 직접 찾아가 얼굴을 내밀고, 농사짓는 방법도 물어보곤 하지요. 돌아오는 '정'은 항상 그 이상이지요."

평생 벗어나 본 적이 없었던 도시를 떠나 3년 전 고령 다산면 월성리에 새 보금자리를 잡은 배재순(46·여) 씨 역시 자연이 주는 기쁨에 온 가족이 행복하다고 전했다.

배 씨의 남편 서정학(51) 씨는 "코를 마비시키는 매연냄새 대신 맑고 신선한 공기가 온몸의 피를 정화하듯 상쾌한 아침을 맞는 전원생활은 행복의 연속"이라며 "인심 좋은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밭도 갈고 농사도 배워 이젠 고추와 상추 등 각종 신선한 채소를 상에 올리고 남는 것은 도시 친구들과 나누기도 한다."고 자랑했다.

동양화가인 배 씨는 주민들에게 보답하는 뜻으로 마을 풍경화를 그려 마을 어귀 쉼터에 걸어 두었다.

◆별의별 마찰 각오해야

청도읍 한 마을에서는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온 A씨 때문에 희한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모 다단계 영업회사에 근무하는 A씨 집에는 업무정리, 결산, 단합 등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일을 본 뒤 야심해서야 차를 타고 돌아간다는 것. 이들이 밟는 자동차 가속페달 소리에 곤하게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버린 주민들은 새벽 이른 시간이 되면 요란한 경운기 소리를 내며 A씨 집을 몇 바퀴 돌아버리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

이에 맞서 A씨는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농로에서 경운기를 만나면 길을 비켜달라고 자동차 경음기를 울려 대고, 화가 난 주민들은 농로에 경운기를 세워 두고 들이나 집으로 가버리는 일도 적잖게 일어난다.

전원주택 개발과정에서나 입주 이후 주민들과의 마찰 등 부작용도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무작정 농촌을 찾았다가 1, 2년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다.

경산의 한 동네에서는 외지인 B씨가 동네 위에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하자 주민들이 진입도로를 측량, 자신들의 소유지분만큼 찾아내 길을 막아 버렸다.

주민들은 "말이 전원주택이지 몇 년 후 음식점으로 개조해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 오염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B씨도 "레미콘과 자재 차량들이 제대로 진출입을 하지 못해 공사가 늦어졌다. 내 땅에 주택을 짓겠다는데도 뚜렷한 이유도 없이 길을 막아 그동안 농촌에 대해 가졌던 좋은 감정이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산의 다른 마을에서도 새마을공사로 포장한 진입로 사용을 놓고 주민들이 외지인 C씨의 차량 출입을 막기 위해 경운기로 길을 막는 사태가 발생했다. C씨가 뒤늦게 '동네발전기금'을 내서 화해를 했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는 앙금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마을에 들어온 D씨는 집 안에 골프연습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골프연습을 하자 주민들이 농촌 정서를 감안하지 않는다며 다툼을 벌였다.

지난해 대구에서 영천 화북면의 한 전원주택을 구입해 들어온 E씨는 주민들이 마을 공동지하수 개발비용 200만 원을 내라고 하는 바람에 기가 막혔다. E씨는 "먼저 살던 사람이 이미 개발비용을 부담했으니 못내겠다고 버티자 지하수 연결관을 잘라버렸다."며 "결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200만 원을 부담했지만 주민들과는 담을 쌓고 살고 있다."고 했다.

청도에서는 동호인으로 함께 들어왔던 입주민들이 비슷한 시기 모두 집을 팔고 떠난 곳도 있다.

◆철저한 준비만이 낭패 막아

막연한 동경만으로 시작한 전원생활은 낭패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전국전원생활운동본부나 경북도농업기술원 등에서 주관하는 전원생활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전에 충분한 탐색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우선 왜 전원생활을 하려고 하는지 자문자답해서 목적을 뚜렷이 한 뒤 가족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성주 선남면에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통나무집 건축일을 하는 김대규(38) 씨는 "도회지에서 탈출해 막상 전원생활을 시작했으나 교육과 교통 여건 등이 좋지 않아 몇 년 만에 전원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적잖게 봤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살다가 경산 와촌에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는 최호근(48) 씨는 "가족들을 이해시키고 동의 구하기, 동네사람들과 어울리기 등에 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전원주택을 어디에 지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도심과의 교통여건이나 주변 환경 못지않게 그 동네에 먼저 정착해 있는 주민들과 이웃하며 살아가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생활양식과 문화수준에서 엄연하게 차이가 있어 마찰을 빚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경산 와촌 유창전원마을에 살고 있는 최유복 씨는 "마을 경로잔치나 행사 등에 참석해 같이 어울려야 한다. 이장활동비 갹출 등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동참하고 상호 교류를 하다보면 잘 지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청도군 관계자는 "도시민들이 전원에 대한 기대감이 큰 데 비해 농촌의 정서는 헤아리지 못해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 격차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하고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칠곡·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고령·정창구기자 jungcg@msnet.co.kr 성주·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영천·이채수기자 c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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