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미라'가 되어 버린 남편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을 잡아줄 수도 그의 상처를 매만져 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망부석처럼 멈춘 채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남편의 몸을 동여맨 붕대 사이에는 살갗이 짓물러 터진 고름과 핏자국이 뒤엉켜 있었다. 그 참혹한 모습만으로도 그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굴과 가슴을 뺀 나머지 모든 부위에 2도 화상을 입었다. 남편은 끝없는 고통을 짧은 신음소리로 뱉어내며 겨우 참아냈다. 그녀는 기자에게 멍한 표정으로 때로는 울먹이며 코리안 드림을 설명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꿈이 이미 불길에 휩싸여 모두 타 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장정파(31·중국 산둥성) 씨가 한국을 찾은 것은 지난 4월. 3개월짜리 비즈니스 비자를 쥐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이를 악물고 몇 년만 일하면 산둥성에서 평생 동안 농사 지을 수 있는 비용의 몇 배를 벌 수 있었다. 어쩌면 농사를 지어도 여전히 배를 곯아야 하는 장 씨 가족의 마지막 선택 같은 것이었다. 그는 친지들로부터 빌린 1천500만 원을 모두 브로커에게 건넸다.
그러나 남편으로부터 들은 한국은 잔인하고 가혹한 곳이었다. 한국으로 떠난 지 한 달 만에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남편이 노숙을 하고 있다더군요.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했지만 사장이 잠적하는 바람에 돈도 한 푼 받지 못했다고 했지요."
그 길로 그녀는 남편의 뒤를 따라나섰다. 세 살배기 아들을 칠순 노모에게 맡겼지만 그녀는 잠깐의 고통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뒤돌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 함께여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식당일에 나섰던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월급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남편도 힘겹게 취직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들켜 5일 만에 해고됐다. 부부의 무일푼 생활은 그렇게 몇 달간 지속됐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두렵고 무서웠지요. 그래도 남편은 끝이 아닐 것이라며 절 위로해 주곤 했어요."
남편의 말처럼 끈질긴 기다림은 곧 기회로 다가왔다. 그는 건설용 철판을 만드는 조그만 공장에 재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취업이 이들 부부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줄은 차마 알지 못했다.
취직한 지 두 달 만에 불이 났다. 화장실에서 시너로 옷에 묻은 페인트를 지우던 남편은 그 곳에 점화된 가스 보일러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밀폐된 공간에서 기화된 시너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터졌고, 그의 온몸은 불덩어리가 됐다.
다행히 화기가 호흡기를 타고 들어오지 않아 그는 정말 기적같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는 사고는 장 씨 부부가 겨우 견뎌왔던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병원비만 2천500만 원을 훌쩍 넘겼다."고 했다. 불법체류자 신분인 이들에게 건강보험이 있을 리 없다. 더욱이 퇴근시간 뒤에 발생한 사고여서 산업 재해로도 인정되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몸과 마음이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지만 꿈의 땅이라던 한국에서 기댈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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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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