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인간의 가치를 둔 우리 선조들은 어린 자식이 혼자 숟가락질 할 나이가 되면서부터 밥상머리 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근본인 효를 가르쳤다. 그것은 어린 나무가 나이테 수를 불려가며 제 몸집을 키워갈 때 비뚤어진 가지를 쳐내거나 성장에 필요한 거름을 적당하게 제공하여 뿌리 깊은 나무로 자라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의 저자 이규태 선생은 어렸을 적 짓궂은 장난을 하다가 할아버지에게 들켰다. 현장을 목격한 할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어린 손자를 앞세우고 찾아간 곳은 선친의 무덤 앞. 그리고 자신의 종아리를 걷어 올린 채 겁에 질린 손자의 손에 회초리를 쥐어주며 치게 했다. 그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난 후 못된 짓은 다시 할 수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군 입대를 며칠 앞둔 아들을 데리고 선산(先山)을 찾았다. 이십여 년 동안 부모의 울타리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아들이 처음으로 넓은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다. 몇년간 집을 떠나 있을 아들에게 제 근본을 심어주려고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 숲길을 아들과 나란히 걸어 올랐다.
조상의 유택을 참배할 때마다 "이 분이 네 아버지께는 증조부가 되시고, 네게는 고조부가 되신다."는 식으로 차례대로 일러주며 제 뿌리가 어디에 가 닿아 있는지를 인식시켰다. 그리고 조상의 음덕을 기원하며 고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들은 공손히 한 잔의 술을 올리며 엎드려 절했다. 빠짐없이 조상들을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햇살이 방아깨비처럼 뛰놀고 있는 조부모의 무덤을 마주하고 선 아들의 표정이 제법 경건해 보였다.
다람쥐가 낙엽 속에서 먹이를 찾아 물고 사라진 산길을 내려오며 격려의 표시로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혈기왕성한 청년의 몸일지나 아직 정신이 채 여물지 않은 아들에게 저 조상님들이 계셨기에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 드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마음을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중심을 잘 잡으라며 당부했다.
특별한 인사에 감회가 깊었던 듯 진지한 모습의 아들이 미래의 각오를 밝히며 염려스러움으로 바라보는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사나운 비바람이 불어닥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제 뿌리를 마음 깊이 새긴 아들이 세상 어디에 있든 쉽게 근본을 망각하지 않을 것이라 믿으며 내려서는 산길에 어디로 가려하는지 산까치 한 마리가 힘차게 날아올랐다.
윤미전(시인·대구한의대 겸임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