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교 1학년인 큰놈과 말다툼을 벌였다. 論旨(논지)는 간단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을 입시기계로 만드는 현행 교육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다. 속으로는 공부가 힘들어서 그러는가 보다 하면서도, 그래도 부모로서 뭔가 그럴듯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야겠다 싶어 잠시 뜸을 들이는데, 곧바로 닦달이 이어졌다.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입시기계화시키고 있는 이 제도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잘라서 답하라는 거였다.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이라며 얼버무리는데 결정타가 날아왔다. 그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정당한가,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가 내버려두면 잘못된 것은 누가 고치며 도대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쏘아댔다.
'불확실한 너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등등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하다가 결국엔 "너만 고생하는 거 아니니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아이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방문을 나서자니 입맛이 썼다.
어제는 수능시험 날이었다. 2003년 67만 5천900여 명에서 해마다 줄어 올해 응시자는 58만 4천900여 명이었지만 그 가족과 학교 관계자, 잠재적인 수험생을 포함하면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날이다. 직업 탓에 개인적으로는 매년 이때가 되면 한바탕 북새통을 치르는 연례행사였지만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이제는 필연적으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10년째 교육부문 취재를 맡고 있는 후배에게 올해 수능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고 했더니, 돌아온 그 답이 가관이다. 20년이나 진학지도를 맡고 있는 교사가 두꺼운 책 한 권을 들고 몇 시간을 설명해도 모자라는 것이 요즘 수능이라며 그래도 고3 부모가 되면 다 알게 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긴 예전에는 A4 용지 하나만 있으면 학생들에게 대입에 대한 설명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란다는 입시지도교사의 푸념을 들은 기억도 난다.
대입광풍이 매년 불어닥치고 그 후유증에 온 나라가 몸살을 앓지만 '시험'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결코 정답이 나올 수 없는 제도개선 문제를 거론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욕심이 다 다르고, 자식문제에 관한 한 그 어떤 희생도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이 '부모'라는 생각에 스스로 얽매여 있기에, 공·사교육의 불균형이나 치맛(바지)바람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국민 대부분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교육이라는 것이 학생 중심으로, 나아가 인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明證(명증)한 상식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수십 년 동안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을 어찌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요즘의 세태를 보면 간단한 예비고사와 함께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이나 학과를 선택해 시험을 치던 우리 시대 때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물론 그때도 과외나 학원이 득세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고교시절은 물론 중학교,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기계로 만들지는 않았다.
세월을 되돌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세상에서는 더욱 힘들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에 자신의 황금시기를 몽땅 투자하고 있는 張三李四(장삼이사)나, 이렇게 복잡하고 '비인간적인' 입시제도를 만든 대학, 교육전문가들도 모두 학부모라고 본다면 합의점을 찾기가 그리 어려울까 싶다.
"이제는 제도를 고칠 힘을 가진 사람들도 학교 다닐 때 입시기계가 돼 고생을 했으면 자식들에게만큼은 그런 나쁜 제도를 물려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항의하던 집 아이의 말이 내내 떠나지 않는다.
추신=이 자리를 빌려 혹시라도 아이 공부에 방해가 될까 발소리와 목소리를 줄여야 했던 이 땅의 모든 학부모께 지난 1년간, 아니 수년간의 마음고생, 몸고생에 대해 '남의 일 같지 않아' 찬사를 드립니다.
정지화 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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