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투병 안옥분씨
유방암이 척추와 간, 오른쪽 뇌까지 전이된 두 아이의 엄마를 만났다. 절망의 늪에서,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힘겨워했던 이들을 여러 번 마주했던 '이웃사랑' 취재진에게 그녀는 너무나 의외였다. 그녀는 생기가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험난한 지난 삶을 풀어내는 얘기도 거침이 없었다. 제비뽑기를 하자며 졸라대던 그녀의 딸 유림(9)이 덕분에 대화 중간에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죽음에 대해 물어야 하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고 취재가 끝났다. 밝게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어이없이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의 웃음 뒤에 숨겨진 절망이 갑작스레 다가와 숨이 막혀왔다. "죽음이요? 글쎄요.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밝게 살면 하루 정도 늦춰지지 않겠어요." 아홉살 난 딸아이와 장애를 가진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는 그녀에게 '웃음'은 남겨질 가족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같은 것이었다. 선물 보따리를 한아름 받았는데도 이상하게도 눈물은 한동안 쉼없이 흘러내렸다.
"유림이는 서른 여덟에 어렵게 나은 늦둥이 딸입니다. 노래도 곧잘 따라하고 춤도 잘 추던 재간둥이지요. 네살 땐 엄마 아프다고 병원에 와서 종일 재롱을 피우는데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어요. 근데 그땐 몰랐지요.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남편(53)이 사고로 허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 것이 제 탓만 같았거든요. 암에는 식이요법이 좋다며 종일 먹거리에 신경쓰며 짬짬이 공사장 막일을 나가는 남편에게 어쩜 사고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니까요. 남편은 그렇게 척추에 철심 6개를 박고 곱사등이 됐고, 전 한쪽 가슴을 도려내고 삶을 되찾았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남편의 건강과 맞바꾼 고약한 시간이라며 떠올리는 것조차 싫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 남편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돼요. 남편 수술비 1천 300만 원이 뭐라고 그렇게 아등바등 굴었는지···. 유림이에게도 너무나 미안해요. 그래서 병원도 옮겼어요. 대학 병원에선 면회가 제한돼 함께 있지 못했거든요. 숨이 멎을 것 같은 통증을 이겨낸 뒤 유림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인지 이제서야 깨닫네요"
8인 병실 한켠에 살림 살이를 가져다 놓은 채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대화 도중 유림이 숙제를 거들어 주었다. 지난해 6월 암이 재발한 뒤 그녀는 받아쓰기며 만들기 숙제며 뭐든 유림이와 함께 했다. 유림이의 웃음소리는 그칠 줄 몰랐고 그녀 역시 유림이의 기억에 '웃는 엄마'로 남길 원했다. "제비뽑기 하자." 유림이가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종이에 '메롱', '꽝', '강아지 흉내' 이렇게 글자를 써서 뽑은 사람이 그 지시를 따라하는 거야." 사교성이 좋은 유림이는 처음 본 기자에게까지 게임을 제안했다. '강아지 흉내'를 뽑아든 유림이는 병실 곳곳을 다니며 멍멍 소리를 내며 깔깔거렸다. 다른 환자들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 사이 그녀가 좀전과 달리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생에 대해 욕심을 부리면 안되겠죠? 한없이 미안한데···. 저 어린 것이 기억에서만 엄마를 찾을 수 있는 현실이 답답하네요. 병원비로 진 빚 2천만 원도 유림이의 발목을 잡지는 않아야 할 텐데···. 한숨대신 그녀는 병실을 한바퀴 돌고 돌아온 유림이를 환하게 웃으며 껴안아주었다. 그녀의 웃음 진 눈가에 잠시 눈물이 맺혔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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