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소리 옥구슬 구르 듯
우리 선조들은 아름다운 계곡을 보면, 곧잘 보석인 옥(玉)에 비유하곤 했다. 옥구슬처럼 맑고 푸른 물이 흐른다고 해서 금강산의 한 계곡에 옥류동(玉流洞)이란 이름을 붙이는 등 전국에는 유달리 옥자가 들어간 계곡이 많다. 가야산에도 옥자가 들어간 계곡이 있다. 바로 '옥계(玉溪)'다. 맑고 깨끗한 물이 계곡의 반석을 흘러가는 모양이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과 같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옥계를 따라 걷다 보면 명경지수(明鏡之水)의 선경을 보여 주는 계곡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포천계곡, 화죽천→옥계!
옥계라고 하면 대구 사람들은 물론 성주와 연고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포천(布川)계곡'으로 알고 있는 곳이 바로 옥계이기 때문. 여러 지도에는 옥계가 아닌 '화죽천'으로 나와 있다. '대실계곡'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한 계곡을 두고 왜 이 같은 일이 빚어지고 있을까?
성주의 옛 모습을 기록한 '경산지(京山誌)'를 보자. 이 책 산천조(山川條)에 보면 "옥계의 근원이 가야산 북쪽에서 나온다. 동으로 십여 리를 흘러 가천과 합친다."고 나와 있다. 여러 옛 기록에 자주 나오는 옥계천도 바로 옥계를 일컫는 것이다.
포천계곡이란 명칭은 넓은 바위 위를 흐르는 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것이 흡사 베의 빛깔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됐다. 특히 말년에 벼슬에서 스스로 물러나 옥계 상류에 만귀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가 옥계의 여러 풍경을 노래한 '포천구곡(布川九曲)'이란 시를 지으면서 옥계 대신 포천계곡이란 명칭이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 안내판이나 여러 지도에도 포천계곡으로 표기돼 있다. 화죽천은 가천면의 한 마을인 화죽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덕주 성주향토사연구회 부회장은 "흔히들 옥계를 두고 제2의 불영계곡이라 하거나 포천계곡, 대실계곡, 신계용사계곡이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옥계란 아름답고 예쁜 이름을 찾아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7km 계곡에 펼쳐진 비경들!
계곡의 이름에 대한 얘기는 각설하고 옥계의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져보자. 가야산 북쪽인 가천면 신계리에서 시작하는 옥계는 약 7km를 흘러 대가천에 합류한다. 903번 지방도를 따라 신계리로 가면 왼쪽으로 아름다운 옥계가 펼쳐진다. 상류인 신계리 부근에서 올려다본 가야산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한창 물이 들었다. 백운동에서 보는 가야산 단풍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아름답다.
신계리 토박이 심만권 씨의 안내로 옥계에서도 가장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너리바위'(넓은 바위라는 뜻으로 사투리가 정감이 있음)를 찾았다. 신계리에서 가천면 쪽으로 약 1km 정도를 내려오는 곳에 있는 너리바위는 옥계에서도 여름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명소다. 폭이 20여m가 되는 계곡 전체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그 바위 위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그 밑으로는 푸른 웅덩이가 자리잡았다. 수십여 년 전에는 너리바위 계곡의 양 옆으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는 게 심 씨의 귀띔이다.
응와 이원조는 시 '포천구곡'에서 너리바위와 주변의 풍광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넷째 구비 솟은 바위 그 사이 흐르는 물, 꽃과 나무 얼기설기 온 산을 덮었구나. 너럭바위 한 자락은 씻은 듯이 놓였는데, 신선이 사시는 집 푸른 못을 굽어보네."
너리바위에서 상류 쪽으로 200m를 올라가면 포천이란 이름이 유래된 곳도 만날 수 있다. 계곡의 물이 평평한 바위를 타고 10여m를 흐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이 포말을 보고 사람들은 광목천과 같다고 해서 포천(布川)이란 계곡의 이름을 붙였고, "그 빛이 해인사는 물론 서울의 남대문까지 환하게 했다."는 전설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자연의 신비, 구이폭!
너리바위와 더불어 옥계에서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 만귀정(晩歸亭) 앞 계곡이다. 정자 앞을 흐르는 폭포와 계곡은 가을 빛을 머금고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을 자랑하는 나무들 아래로 폭포가 흘러내리고, 계곡에는 낙엽이 흩어져 있다. 그 뒤로 단풍이 절정인 가야산 정상 칠불봉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만귀정 앞 계곡을 따라 하류로 50여m를 내려가면 숨겨진 비경을 만나게 된다. 만귀정이나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어서 못보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7, 8m에 이르는 폭포가 두 갈래로 떨어지고 그 밑으로 길이 15m, 폭 4m정도 되는 사각형에 가까운 수조(水槽·물을 담아 두는 큰 통) 모양의 웅덩이가 있다. 깊이가 3m가 됨직한 물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수조 양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수십여 명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공간도 있다. 동쪽 절벽에는 구이폭(九二瀑), 제일계산(第一溪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선이 놀다갈만한 곳으로 손색없는 비경이란 생각이 든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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