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결혼 조건

입력 2007-11-09 11:58:01

'결혼'은 세태의 흐름을 비쳐주는 거울과도 같다. 요즘 결혼시장의 핫 키워드는 '婚(혼)테크'라고 한다. 재물의 덩치를 효과적으로 키우는 '財(재)테크'처럼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배우자를 만나 멋지게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거다.

아날로그 세대에겐 그래도 '사랑'이 결혼 조건의 우선 순위로 꼽혔다. 그러나 기업화된 결혼정보회사들이 결혼의 신매개체로 부상한 요즘은 성격과 외모, 경제력 등이 우선 순위가 됐다. 특히 富(부)의 편재가 심해지면서 일반 대중과 상류층 간의 결혼 조건도 달라지는 추세다. 최근 모 일반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관련 설문조사에서는 성격, 외모, 가정환경, 직업, 가치관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 상류층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에서는 가정환경, 경제력, 성품, 능력, 외모 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한 영국 여성의 신랑감 찾기 스토리가 신선하게 와닿는다. 주인공은 세계적인 유명 방송사인 영국 BBC의 여기자 제니퍼 콕스(38). 그녀가 최근 펴낸 '세계 일주하며 80번의 데이트'라는 제목의 맞선기가 화제다. 전세계를 취재무대로 하는 여행 전문 기자인 그녀는 인생의 짝도 그녀답게 찾아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지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남자에 대한 결혼 조건을 제시하고 중매를 부탁했던 것. "나를 미소짓게 하고, 신문을 읽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투쟁을 할 만한 높은 이상을 갖고 있고, 내가 미처 모르는 재미있는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며, 즐기면서 모험적인 생애를 살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

소박하면서도 까다로운 조건이다. 툭 트인 마음씀씀이, 예술을 사랑하는 감성, 해박한 지식, 재미있는 대화솜씨,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사람….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겁게,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동반자를 찾을 것인가가 주요 지향점으로 제시돼 있다. 우리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직장, 사회적 지위, 경제력, 용모 같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다행히 제니퍼는 80차례의 맞선 끝에 한 미국 남자를 선택했다. 다른 사람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불꽃'과 같은 어떤 것을 느꼈다는 것이 이유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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