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지사람 입맛 매료시킨 노·화·도 전복
'갈대꽃섬'. 섬 이름이 참 곱다.
노화도는 염등리 앞 300㏊에 달하는 갯벌에 갈대꽃이 피어 장관을 이뤄 갈대꽃섬, '노화도(蘆花島)'라고 불렀다. 그러나 원래 이름은 고산 윤선도 선생이 보길도로 올 때 어린 종을 데리고 왔다고 하여 '노아도(奴兒島)'라고 부르다가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보길도가 여름철 휴가지로 유명한 데 반해 노화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도 살짝 비껴나 있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있는 섬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국 최대의 전복양식장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전복섬'으로 새롭게 알려지고 있다.
노화읍내 어느 식당에서나 전복을 취급한다. 가격도 싼 편이다. ㎏당 3만~4만 원으로 시중가에 비해 30% 정도 싸다. 관광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보길도에 비해 노화도의 전복 인심이 후한 편이다. 그래선가 노화도에는 관광보다는 싱싱한 전복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외지인이 많다.
노화도에서는 특별히 가볼 만한 관광지나 절경은 없다. 그러나 섬 곳곳을 잇는 도로가 발달돼있어서 걷기에 참 좋은 섬이다. 섬에 들어갈 때 싣고갔던 자동차는 세워두고 두 발로 다니면서 섬 구석구석을 탐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 곳곳에서는 흘린 곡식을 찾아나선 철새들이 날아다니고 고개 너머 보이는 바다는 한없이 평화롭다. 섬의 하루는 짧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면 섬의 남쪽 '땅끝'쪽으로 가보자. 한반도의 땅끝은 해남이지만 바다위 작은 섬의 끄트머리에서 바라보이는 노을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천상의 그것처럼 느껴진다.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는 듯한, 혹은 섬 사이로 살짝 숨어버렸다가 영영 나타나지 않는 저녁놀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노화읍 소재지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죽방렴'이라는 옛 고기잡이풍경을 바다 한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죽방렴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재래식 고기잡이 방법의 하나다. 물살이 센 곳에 U자형으로 7~8m짜리 참나무 말뚝을 30m쯤 길이로 길게 박아놓고 그 끝에 함정을 만들어 놓고 고기를 잡는다. 봄에는 숭어와 돔, 여름에는 병치, 가을에는 멸치를 주로 잡는다.
포전리 앞 갯벌에서는 망둥어를 잡을 수 있다. 망둥어는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 없이도 잘 잡힌다. 잡히는 재미가 꽤 쏠쏠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한번쯤은 해볼 만하다. 포전리 어촌계에 문의하면 자세하게 안내해준다.
▨ 고산 윤선도 '창작의 고향' 보·길·도 비경
한때는 유배지였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 선생이 병자호란 때 제주도로 피난을 가다가 풍랑을 만나 섬에 정착, 어부사시사 등을 지어 유명해졌다. 고산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보길도는 짙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 갯돌이 깔린 해변, 깎아지른 절벽 등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섬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보길도로 가는 배는 늘 만원이었다. 그러나 보길도의 진면목은 가을에 볼 수 있다. 보길도는 안식과 사색의 섬이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그 절벽 끝 바위에는 유배된 송시열 선생의 애끓는 심경이 새겨져 있다.
"八十三歲翁(여든셋 늙은 몸이) 蒼波萬里中(푸른 바다 한가운데 떠있구나)/ 一言胡大罪(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일까) 三黜亦云窮(세 번이나 쫓겨난 이도 힘들었을 것이다) /北極空瞻日(대궐에 계신 님을 속절없이 우러르며)/南溟但信風(다만 남녘바다의 순풍을 믿을 수밖에)…"
바라보이는 것은 바다뿐이다. 바람결에 한양으로부터 임금의 사면을 기다리는 유배된 신하의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바위에 새긴 송시열선생의 그런 심경도 바람과 세월에 깎여나가 알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에 구절초와 야생화가 겹겹이 피어났다. 이젠 우리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안식에 젖어들 때다. 지난여름의 기억을 되살렸다. 그래서 보길도를 '안식과 사색의 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와 해남 땅끝마을에서 물길로 연결된다. 섬은 크다.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를 고스란히 다 둘러보려면 자동차를 싣고가는 것이 편하다. 세연정과 동천석실이 복원됐고 지금은 곡수당과 낙서재복원공사가 한창이다. 혹은 장사도가 바로 보이는 황원포 바닷가에 가면 어부사시사를 지을 때의 고산선생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보길도 주변 바다는 예전 모습만 못하다. 자연도 인간이 있어야 제 역할을 하는 법. 보길도를 둘러싼 사방의 바다는 온통 양식장이다. 예전에는 김양식장이었는데 요즘은 주로 전복양식장이다. 바다풍광은 그래서 양식장 모습 일색이다.
전복이 지천에 깔렸다고 싸지는 않다. 전복은 오히려 이웃한 '노화도'가 원산지다. 노화도까지는 30분마다 탈 수 있는 여객선으로 5분이면 닿는다. 오후 5시30분이 막배다. 그 이후에는 '배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12월이면 보길도와 장사도, 노화도가 다리로 연결된다. 다리는 지금 마무리공사가 한창이다.
글 사진·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노화도, 보길도 가는 길=노화도와 보길도 가는 배편은 완도와 해남군 땅끝 두 곳에 있다. 땅끝선착장에서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노화도와 보길도행 배편이 있다. 모든 여객선은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카페리기 때문에 자동차를 싣고 가는 것이 섬을 둘러보는 데 편리하다. 두 섬에도 택시가 있다. 각각 3천 명(보길도), 6천 명(노화도)의 주민이 살고 있기 때문에 병원과 한의원 등 웬만한 편의시설은 섬 내에 다 있다. 보길도로 바로 가는 배를 타는 것보다는 노화도행 배를 타고 섬을 둘러보고 나서 보길도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노화도에서 보길도까지는 배를 타고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2월이면 두 섬을 잇는 다리가 완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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