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마면 대방리에 소재하고 있는 양로원 '본향'을 다녀왔다. 김천에서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양로원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고 다녀온 것이다. 양로원을 찾던 그 날은 햇살 퍼진 하늘이 옥양목을 팽팽하게 다림질한 것처럼 곱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양로원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날은 학창시절 소풍을 갈 때처럼 마음이 들뜬다. 내 작은 정성과 어쭙잖은 재주가 그 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그 분들을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올 때가 더 많지만 나는 가끔 양로원을 찾는다. 양로원 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다. 가을이라 산엔 사랑하는 이 마중이라도 하듯 볼그레하게 단풍이 마중 나와 반겨준다. 숨이 턱까지 닿을 때쯤에야 닿을 수 있는 양로원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먼저 다른 봉사 팀이 와 있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모람회'라는 이름의 자원봉사자들이란다. 이들 봉사자들은 갖가지 맛난 음식들을 푸짐하게 준비해와 차려 놓았다. 그날 참여한 봉사 팀은 세 팀이었다. 대구에서 올라온 의료진이 포함된 '모람회'와 김천에서 내가 소속하고 있는 연예협회 몇몇 회원들. 할머니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미용봉사팀이다.
행사가 시작되자 할머니들의 얼굴엔 희색이 만면하고 어린애처럼 즐거운 표정을 지으셨다. 혼자서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고 휠체어가 있어야만 이동을 할 수 있는 분이 있는가 하면 치매로 아무나 붙들고 "아빠"라고 불러 눈물샘이 터져 울면서도 웃어야만 하게 하셨다.
할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한 음악회가 시작되자 '본향'은 금방 신명나는 분위기로 바뀐다. 자원봉사자들과 할머니들이 한마음이 되어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떤 자원봉사자가 마이크를 잡더니 '부모'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 긴 밤 어머니하고 둘~이 앉아…."
참았던 눈물이 둑을 무너뜨리고 흐르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노래를 부르던 사람도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나는 살며시 할머니의 손에 내 손을 포개본다. 냉기가 도는 할머니의 가슴에 내 미약한 온기가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이곳 할머니들에게도 창문 너머 푸르름과 붉게 물드는 가을의 아름다운 열정들처럼 젊음의 아리땁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세월을 비켜가지 못했을 뿐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져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세월,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불평을 할 수 없다.
양로원을 나오자 할머니 몇 분이 배웅을 해주신다. "고맙다."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드셨다.
"할머니, 또 올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해요. 절대로 아프시면 안돼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연세가 많은 할머니를 두고 나오려고 하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쳐다 볼 수도 없었다. 그날 따라 노을이 더 슬퍼보였다. 마치 '본향' 앞뜰에 미리 물들어버린 은행잎과 단풍들이 갈 길을 재촉이라도 하는 것 같아 아파보였다.
내년에 다시 찾아갔을 때 할머니들이 그대로 계셔 주길 바라는 맘 내 발자국으로 뚜벅뚜벅 새겨 놓으며 산길을 내려섰다.
김순조 / 김천시 덕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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