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男 교사 할당제' 교육현장 목소리

입력 2007-10-30 07:14:09

수업학업 성취도 "男 못쟎죠"…학생 생활지도 "男 부럽죠"

▲ \
▲ \'교직 여초(女超)현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대구 화남초교(사진 위)와 성동초교 교사들을 만나 남 교사 부족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들어봤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남자 선생님이 모자라요!"

서울시 교육청이 최근 '남교사 할당제(양성균형 임용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초등학교 여교사 비율이 86.4%에 이르는 등 교직사회의 심각한 여초(女超)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남성 교사 임용을 일정 비율 할당하자는 것이 골자. 지난 6월에도 남교사 할당제가 거론된 바 있지만 '여교사가 많다고 해서 학생들이 올바른 성 역할을 배우지 못하거나 학업 성취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는 교육부의 신중론에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서울시 교육청은 이번엔 연구팀까지 조직하며 남교사 할당제 관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남교사 기근 현상은 대구도 마찬가지. 현재 초등교사 79.9%가 여교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현장의 남녀 교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대구에서 비교적 남교사가 많은 화남초교와 여교사가 많은 성동초교를 차례로 방문해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남교사들의 얘기

먼저 남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25일 화남초교를 찾았다. 화남초교는 교직원 48명 중 23명이 여교사, 25명이 남교사로 대구에서는 남교사가 더 많은 몇 안 되는 학교 중 한 곳이다. 이날 좌담에 나온 남교사들 가운데는 부부 교사도 여럿 됐다. 평소 아내를 통해 여교사의 어려운 점에 대해 자주 듣는 편이라고 했다.

"솔직히 학업 성취도나 수업 내용면에서 남녀 교사 간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차이는 수업 외적인 면에서 나타나지요." 교직 10년차인 이주형 교사는 여교사들의 어려움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야외 현장학습을 갔을 때 남교사는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통제가 됩니다. 하지만 여교사는 상대적으로 힘들죠." 5, 6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 대한 생활지도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내가 하루는 학교에 다녀와서는 무단결석한 남자애를 나무랐더니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왜 이러는데?' 하더라며 기막혀 하더군요." 한 남교사는 교직 경력이 오래된 여교사들도 요즘엔 생활지도 부담 때문에 고학년반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전했다.

여교사 일색인 일터에서 느끼는 불만도 있다. 차종화 교사는 "예전 학교에서 운동회 준비를 했는데 남교사 2명이서 천막 세우고 100m 라인 긋고 다 했다. 지금은 일할 사람이 20명이 넘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 교사는 "초보 남교사 경우 나이 지긋한 남자 선배 아래서 이것 저것 배울 것이 많은데 아무래도 여자 선배 아래에서는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차 교사는 "남자 아이들이 남자 선생님을 따르는 만큼 여자 아이들이 여자 선생님을 따르는 것 같지는 않다."며 남교사를 두려워하면서도 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남교사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수 방법의 꼼꼼함이나 세세한 생활지도는 여교사를 닮고 싶다고 했다. 남자 교사가 선호되는 것은 "희소성 탓이 크다."고 해석했다. "이상적인 남녀 교사 비율은 50대 50이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남녀 교사가 서로의 장점을 배워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최선일 테죠."

▶여교사들의 얘기

"한 명뿐인 총각 선생님이 내년에 군에 입대합니다. 정말 걱정입니다." 성동초교는 교직원 58명 가운데 체육전담교사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여교사다. 34개 학급 담임, 부장교사 12명 전원이 여교사다. 대구 초등학교 중 여교사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로 손꼽힌다. 피부로 느끼는 남교사 부족 현상에 대한 걱정이 더욱 심각했다. 무엇이 가장 큰 걱정일까. "아버지가 늘 바쁘다보니 집에서 아버지를 잘 못 봐요. 학교에 오면 여자 담임이죠, 학원에 가도 여강사예요. 집에 돌아가면 또 어머니가 맞아주고요. 아이들이 성인 남성으로부터 남성성을 배울 곳이 없어요." 구은숙 교사는 남자 아이들이 여성화돼 간다는 데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글씨체까지 선생님을 닮기 마련인 초등학생들이 줄곧 여교사 아래에서 배우다보면 행동거지도 한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수행평가 과제물만 봐도 여교사들이 대체로 섬세하고 꼼꼼한 것을 요구하니까 아이들도 그런 요구에 맞춰 행동하는 경향이 많다고 했다. 반대로 이런 요구를 따라잡지 못하는 남자 아이들은 교실에서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김선자 교사는 "대체로 고학년 남자아이를 둔 학부모일수록 남자 선생님을 더 선호한다."며 "남자 선생님은 가정의 아버지처럼 세세한 규제는 하지 않고 어울려 주는 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편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남교사가 적다 보니 일부 교육현장이 여성화되기도 한다. 운동회나 야외 체험 등 주로 행사와 관련해서다. 성동초교는 올해 운동회 준비를 외부 이벤트사에 맡겼다. 개선문 제작이나 만국기를 다는 등 힘쓸(?) 일을 할 남교사가 없어서다. "차전놀이, 기마전 같은 놀이는 다 사라졌어요. 요즘엔 남자아이도 부채춤을 춰요. 포크댄스도 하고요. 과격한 종목은 (남)교사의 강한 통제력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여교사는 약하죠." 뜀틀, 철봉 시범도 잘하는 아이에게 맡기는 일이 많다. 올해 교직1년차인 남은주 교사도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데 쉬는 시간에 남자아이들이 실뜨기 하고 놀더군요. 작년 임용고사 준비 때만 해도 남교사 할당제를 반대했는데 현장에 나와 보니 문제가 심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교사의 장점도 많다. 실제 여교사 아래서 배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낮다는 연구결과는 어디에도 없다. 노경희 교사는 "저학년 기초교육은 여교사가 더 우수하다."며 "하지만 현재와 같은 남교사 부족 현상은 남교사 할당제와 같은 인위적인 방법보다는 남학생들의 교직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