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90% 모아 지독한 가난 벗었다
대구 섬유업체인 (주)한남교역의 강구문(44·대구 달서구 용산동) 대표. 저축의 날(30일) 국무총리상을 받는 그는 '저축 전도사'다. 매달 1억 원의 적금을 넣고 현재 예금은 20억 원이 넘는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은행에 예·적금 형태로 돈을 묻어두는 것은 엄청난 모험. 소득이 고스란히 드러나 모두 세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이렇게 '우둔한' 일을 앞으로도 멈출 생각이 없다. 어렸을적 하루 3끼를 채운 기억이 거의 없고, 대학진학조차 포기하게 했던 지독한 가난을 떨쳐준 것이 바로 '저축'이었기 때문이다.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저희 가족에게 남겨진 것은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굶는 것이 일상이었고, 집세가 없어 이사를 1년에 2번씩 다녀야 했습니다. 대학진학도 결국 포기했죠. 군제대 직후인 1983년 섬유회사(갑을)에 취업해 독한 마음을 먹고 저축을 시작했습니다. 월급의 90%를 은행에 넣었죠."
그는 상대적으로 임금을 적게 주는 섬유업체에서 고졸 생산직으로 일했음에도 불구, 가정을 일구고 저축을 통해 '거금' 1억 원까지 모았다.
"10년 만에 1억 원을 모은 거요? 고졸 생산직 임금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것이죠. 그러나 이 길이 아니면 나는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월급날만 되면 무조건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모은 돈 1억 원에다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 1995년 군위군의 제직 공장을 인수했다. 새벽 5시부터 일과를 시작하는 강행군을 통해 그는 10년 만에 염색공장(호명염직)까지 인수, 연 매출 100억 원(이 가운데 절반은 수출)을 넘어서는 탄탄한 기업을 만들어냈다.
"창업을 통해 수백억 원의 자산을 일궜죠. 하지만 저는 원칙이 있습니다. 수입금 가운데 투자에 들어가는 돈 외에는 무조건 저축을 하는 것이죠. 주식 등의 금융 투자는 하지 않습니다. 수십 명의 공장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는 중소기업인이 금융투자를 하는 것은 사실 모험입니다. 제조업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니 항상 불확실성에 대비한 자금비축은 필수죠."
그는 예·적금을 통해 소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했다. 번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는 것.
강 대표는 백만장자가 됐지만 아직도 허름한 국밥집에서 식사를 할 정도로 자신에게는 여전히 엄격하다. 하지만 연간 2천만 원가량을 적립한 통장을 따로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자선사업에 쓴다.
"어렸을 때 너무 못살다 보니 문화공연을 보고싶어도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어려운 이웃들에게 문화공연 혜택을 주는 '문화도시락' 프로그램 등에 후원을 합니다. 가난하지만 정서가 메말라서는 안되죠. "
그는 투자의 시대라지만 자신은 저축의 길을 간다고 했다. 분수에 맞게, 또 자신의 능력에 맞춰 번 돈을 운용해야지, 남들 따라가다 보면 실패를 하기 쉽다는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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