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주연이 되어보세요
'봉사는 삶의 비타민', '봉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등 봉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말들은 많다. 하지만 아직도 '봉사는 남의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봉사라 하면 무조건 육체적 봉사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봉사의 방식은 다양하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봉사를 통해 남들에게 베푸는 것보다 내가 얻어가는 것이 훨씬 더 많다."고 말이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봉사를 통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성들을 만나본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마당발 활동 신미경씨
"봉사요? 너무 뻔한 얘기지만,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신미경(45·대구 북구 읍내동) 씨는 '자원봉사 백화점' 수준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구연, 노인들 안부전화 걸기, 독거노인 돌보기 등 가지각색이다
신 씨는 이를 위해 매일같이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자원봉사 장소로 나온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책 녹음봉사를 하는 날. 시각장애인들이 의뢰한 책을 읽고 녹음한다. 한자가 섞인 전문적인 학술 서적의 경우 밤새워 내용을 파악하기도 한다.
평소 봉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던 신 씨는 1999년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을 계기로 자원봉사에 뛰어들었다. 셋째인 막내가 아직 어릴 때라, 아이를 업고 홀몸노인 반찬을 날랐다. '봉사는 애들 다 키워놓고 여유있는 사람이나 한다.'는 생각에 일침을 놓는 대목이다.
"1999년에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해 동화구연을 한 적이 있어요.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너무 놀랐어요. 심한 욕설을 내뱉고 산만한 아이들을 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어요."
신 씨의 봉사를 계기로 온 가족이 봉사를 하고 있다. 남편 김현철(45) 씨는 매주 소년원에서 만남을 갖고 딸들은 장애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에 익숙하다.
신 씨만의 봉사 비결은 무엇일까. "잘하려고 하면 금방 지쳐요. 일상생활처럼 꾸준히,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죠."
신 씨는 '자신만의 특기를 미리 만들어두라.'고 조언한다. "요즘엔 봉사도 전문영역화 되고 있어요. 적성에 맞는 것을 골라 꾸준히 특기를 연마하다 보면 봉사를 하고 싶을 때 쉽게 뛰어들 수 있죠." 신 씨 역시 동화구연을 꾸준히 익혔고 이것이 동화구연 봉사, 녹음봉사로까지 연결됐다. 노인상담을 위해 1년 넘게 상담, 미술치료 등 전문 교육을 받아온 준비과정도 지금의 밑거름이 됐다.
신 씨는 요즘 노인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여유가 된다면 노인상담소를 열고 싶단다.
"그분들을 통해 저의 노년기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요. 그러면 자녀교육 등 인생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때가 많아요. 이것이 봉사가 저에게 주는 선물 아닐까요."
◇ 한국어 강사 황혜경 씨
"안녕하십니까, 니 하오, 신 짜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복지관에서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황혜경(44·대구 북구 읍내동)씨는 수업시간마다 4개국어로 인사한다. 낯선 타향살이에 마음이 지친 학생들은 고국의 인사말을 듣는 것만으로 즐거워한다. 하지만 황 씨의 마음이 더 즐겁다. 한국어 배우겠다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1시간이나 걸어온 그들의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이면 각 국의 전통음식을 나누어먹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야유회를 떠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더 쉽고 재미있게 한국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황 씨의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 3년 전, 친구를 따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봉사를 시작한 것이 이제 든든한 명함이 됐다. 한국어강사 양성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한국어 강사로 나선 것. "40대가 되니 빈둥지 증후군도 생기고 괜히 공허하더라고요. 사는 게 왜 이럴까 싶은 것이. 때마침 운좋게 봉사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겁니다."이주여성들을 보노라면 안타까울 때도 많다. "같은 여자로서, 15~20세 차이나는 낯선 외국인 남편과 살면 얼마나 외로울까 싶어요. 문화적 차이일 뿐인데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고요. 수강생 중 한 분은 재혼으로 한국에 오셨는데, 두고온 딸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공장에 다닌다고 수업을 이제 못 나와요. 그래도 일 마치면 먼 길을 달려 다른 수강생에게 배우신대요."
얼마 전 추석에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수강생들이 음료수 등의 깜짝 선물을 한 것.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베푼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사실 내가 더 행복한데, 잠시나마 그런 마음 가진 게 미안해요. 또 자신감이 생긴 것이 큰 소득이에요. 어떤 큰 무대에서도 떨리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요."
이제 이 길이 노후를 준비하는 과정이 됐다. 12월에 있을 한국어 교육 능력시험도 준비중이고 사물놀이도 배우고 있다.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나중에 외국으로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어요.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는 노후가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회에 도움되는 일을 하는거죠. 그것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합니다."
◇ 대구 여성의 전화 이정희 씨
"힘들 때 손 한번 잡아주는 게 큰 힘이 되잖아요. 그게 제 역할이에요. 누군가 손잡아줄 수 있는 힘이 제게 있다는 게 감사하죠."
장애인에 대한 봉사를 하던 이정희(50·대구 수성구 지산동) 씨는 4년 전, 대구여성의전화 사무실을 찾았다. 여성들을 위한 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기도 했지만 여성문제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 이전에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일상에 스며있는 여성 차별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시작된 자원봉사는 4년간 일주일에 두 차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이 씨는 갖가지 사연을 들으며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다. 요즘은 남성들의 전화도 많다.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란다. "주로 부부싸움 후에 전화가 많이 와요. 경상도 남자들은 표현방식이 서투르고 대화법을 몰라서 화해 방법도 모르거든요. 한참 상담하다 보면 결국에는 '그래도 그 사람이 살림은 잘한다.', '내가 돈은 못벌어도 아내를 사랑한다.' 는 식으로 은근히 자랑해요. 부부사이에 작은 표현이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려요,"
때로는 심각한 전화도 있다. 상담자가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극심한 우울증으로 흐느끼면서 '죽고싶다.'는 말을 하면 당황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 "절박할 때는 내 말 한마디가 잣대가 될 수 있거든요." 질 높은 상담을 위한 끊임없는 공부는 필수다.
처음엔 '왜 시간내서 꿀꿀한 얘기 듣고 있냐'고 핀잔주던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나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고등학생, 대학생 딸들과 피임 등 성(性)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됐다. "상담 시작 후 처음엔 세상이 무서웠어요. 하지만 이젠 딸들에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길러줘야겠다 싶어요." 남편과의 대화 주제도 훨씬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변한 것은 이 씨 자신이다. "늘 남편이 좀 더 잘해주길 바랐죠. 하지만 이젠 아니에요. 건전한 사고의 남편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속물근성이 없어졌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예요."
이 씨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봉사를 권한다. 딸들에게도,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에게도 '봉사는 꼭 하라'고 말한다. "봉사는 그저 일상이에요. 아줌마들에겐 체험이란 큰 지식이 있잖아요. 조금의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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