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스포츠에서 배워라

입력 2007-10-26 10:52:10

승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일까? 프로야구 가을잔치인 한국시리즈에서 SK와 두산 두 팀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신경전은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빈볼(bean ball:야구에서 투수가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고의로 타자의 머리 쪽으로 던지는 공) 시비다.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25일 잠실구장. SK가 9대 0으로 앞선 6회 초 공격에서 두산의 투수 이혜천이 SK 김재현의 등 뒤로 공을 던졌다. 이후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나와 뒤엉켰고 경기는 약 6분 동안 지연됐다. 양팀은 지난 2차전에서도 그라운드 대치상황을 벌인 바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빈볼 시비는 상대팀에 대한 배려나 예의가 전혀 없는 스포츠맨십의 실종에서 비롯됐다. "지나친 오버액션이 빈볼 시비의 원인입니다." 3차전 TV중계 해설자가 이 상황을 명쾌하게 지적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큰 경기일수록 오버액션이 강하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인 7차전에서나 나올 법한 지나친 환호가 1차전, 아니 그 이전 정규시즌에서부터 시작되어 왔다. 상대의 실수에 환호하고 1점이라도 먼저 내면 승리라도 확정된 듯 야단이다. 이런 식으로 상대팀의 약을 올려 왔고 이게 빈볼을 불러왔다.

스포츠맨십이 뭔가?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승자에겐 박수를, 패자에겐 위로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승리의 기쁨을 넘어서는 지나친 오버액션은 패자로부터도 승복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한국시리즈에서의 빈볼 시비를 보며 문득 눈앞에 다가온 대통령선거를 생각해 본다. 한국정치, 스포츠에서 배울 게 많아서다.

지금 정치판에서는 빈볼이 판을 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공방이 도를 넘고 있다. 스트라이크를 넣을 생각은 않고 서로에게 위협구만을 던진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양당은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BBK 주가 조작 관련 의혹과 정동영 신당 후보 처남의 주가 조작 문제를 놓고서다.

야구에서의 빈볼은 때론 긴장감을 주고 때론 경기를 보는 재미를 더해 주기도 한다. 빈볼이 옳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관중들이 이것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비록 빈볼 시비로 기(氣)싸움을 할지언정 판을 깨는 법은 없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관중인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 치부를 캐내 위협구를 날리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전쟁터 같은 느낌이다. 위태위태하다. 언제 판이 깨질지 모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프로축구 그라운드에서 일부 선수들이 관중석으로 뛰어올라가거나 물병을 되던지는 등 추태를 부렸다. 꼼꼼히 따져보면 관중들이 원인제공을 한 경우가 많다. 그라운드에선 오직 승리뿐이다. 열정은 사라지고 증오만 남았다. 이런 분위기는 관중석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오직 내 편이 이겨야만 한다. 상대편에 대한 배려나 이해는 실종이다. 이로 인해 '응원'은 사라지고 '야유와 욕설'만 판을 치게 된다. '저질' 응원 매너로는 선수에게 페어플레이와 최상의 경기를 바랄 수 없다. 선수뿐 아니라 관중에게도 스포츠맨십이 요구되는 이유다.

대선 그라운드에 플레이오프를 거친 선수들이 잇따라 모여들었다. 이들이 최상의 경기를 펼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이제 관중들인 국민의 몫이다. 스포츠 그라운드이든 정치 그라운드이든 저질 응원 매너는 선수들의 페어플레이에 영향을 미친다.

마지막으로 결과에 승복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빈볼 시비가 있더라도, 물병이 날아다녀도 스포츠는 금세 수습되고 경기는 진행된다. 선수들이 심판의 퇴장명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과연 그런가?

대통령선거는 스포츠경기와는 다르다. 대선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은 한 국가의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지도자들이다. 경기가 공명정대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또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할 준비도 갖춰야 한다. 스포츠맨십 정신에 비추어본다면 그것이 지고도 이기는 길이다. 또 다음 경기에 다시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기도 하다.

박운석 스포츠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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