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휴일을 집에서 그냥 보내기엔 날씨가 너무나 아깝다. 높푸른 하늘만으로도 사람의 발길을 잡아끈다. 이 가을, 떠남에 목마른 계절이다. 이번 주 '어서 오이소' 취재팀은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 하회마을을 찾고, 추색(秋色)에 물든 소백산 자락 영주 선비촌 고가(古家)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조상의 숨결과 문화향기 가득한 전통체험으로 역사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탈춤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입구에 위치한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회관. 마침 이날은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에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정기발표 공연날(사진 ①)이다. 인간문화재 3명을 포함한 전수자들이 총출동했다. 매주 토·일요일에 펼쳐지는 상설공연에서는 다 보여주지 못하는 10마당 전체공연이 이루어졌다.
별신굿을 하기 위한 신내림 과정인 강신(降神), 놀이패가 각시광대를 어깨 위에 태운 채 무대를 도는 무동마당으로 놀이가 시작된다. 곧이어 백정마당에선 어슬렁거리며 소가 등장한다. 관객을 향해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자 웃음이 터진다. 백정이 소를 때려잡고선 소의 뱃속에서 염통과 소불알을 꺼내고, 구경꾼에게 이를 사라고 흥정하는 즉흥대사에서 폭소가 만발한다. 그런가 하면 구슬픈 할미마당이 이어지고, 파계승마당에서 풍물에 흥이 한껏 오른 관객 서너 명이 나와 함께 어울려 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양반·선비마당에선 '사대부' '팔대부'를 거들먹거리며 지체 자랑을 하는 지배층에 대한 위선과 가식을 드러내고 조롱한다. 이매와 초랭이의 익살스런 행동과 느릿한 대사도 관객들에게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한 시간 반 가까이 진행된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체공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일까. 이어서 마련된 하회탈과 탈목걸이 채색을 직접 해보는 참가자의 입가엔 하회탈의 미소가 번졌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올해 상설공연은 11월까지 열리며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시작한다. (10월 마지막 주는 토·일요일 공연) 관람료 무료.
◆조선시대 선비가 되어볼까
하회마을에서 승용차로 40여 분 거리인 영주시 순흥면에 자리 잡은 선비촌(사진 ②). 그 옆에 바로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다. 순흥은 원래 참나무 숯불에 쌀밥 해먹던 동네요, 사방 10여 리를 가도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문풍이 드높았던 고장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는 선비촌은 과거 영주에 있던 고택 열두 채(기와집 7채·초가 5채)와 누각, 정려각, 성황당, 강학동, 저잣거리 등을 재현한 5만 7천여㎡ 면적의 매머드급 문화테마파크다.
"이리 오너라!" 지나가다 해가 저물어 하룻밤을 청하는 선비처럼 마을 초입에 있는 김상진가(家)를 찾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안방, 사랑방, 고방, 부엌 등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ㄷ'자형 중산층 양반가옥이다. 황토벽에 한지로 벽을 바른 안방은 이층농, 삼층장, 서안 등이 놓여 마치 주인이 기거하는 집을 빌려 쓰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대청마루엔 커다란 쌀뒤주가 인상적이다.
초저녁엔 이웃 김문기가, 장휘덕가, 해우당 고택 등으로 밤마실을 나간다. 별이 총총 박힌 새까만 하늘 아래 달빛 따라 산책하는 기분이란…. 집으로 돌아와 몸을 누이면 비록 들바닥은 아니지만 절절 끓는 방은 피곤을 잊기에 그만이다. 그렇게 선비촌의 밤은 깊어간다. 수세식 화장실과 세면대를 갖추고 있으며 마당으로 나가서 용무를 봐야 하는 불편쯤은 충분히 참을 수 있다.
◆전통혼례체험
"부선재배" "서답일배" 초례상을 사이에 두고 신부가 먼저 두 번 절하고, 신랑이 이어서 절을 한다. 선비촌 가운데 널찍한 마당에서 벌어지는 전통혼례 체험장(사진 ③이다.
이날 고운 원삼을 입고 백포를 손에 두르고 연지곤지 찍은 주인공은 지난해 8월 베트남에서 이곳 한국으로 시집온 보티지(21·남양주시 와구읍 도곡리) 씨. 늦장가 든 신랑 이규성(45) 씨가 어린 신부를 위하는 마음에서 참여 신청을 했다.
집례를 맡은 송택동 선비촌 관리실장이 진행과 해설까지 덧붙여 관객들 이해를 도왔다. 혼례의 엄숙한 의식 속에서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예컨대 집사를 앞세우고 신랑이 입장할 때 밑에 콩을 깔아둔 돗자리 위로 지나게 한다. 그러자 신랑이 보기좋게 넘어진다. 일어나는 신랑의 모습을 보며 신체의 이상 유무를 살피는 것. 또 신부가 건네준 술잔을 신랑이 마시고 난 뒤 안주로 놓인 두부를 손대지 않고 뒤집게 한다. 이는 신랑의 지혜와 융통성을 테스트하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웃고 박수치며 다같이 참여하는 마당이 된다.
◆영주 사과따기 체험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이어지는 931번 도로는 '사과 드라이브' 코스로 불린다. 은행나무 가로수길 양편으로 비탈진 사과밭엔 굵고 새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가을을 노래한다.
영주사과는 소백산 남쪽에 위치한 산지과원에서 생산돼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공기 덕택에 맛과 향이 뛰어나며 특히 성숙기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다. 부석사로 가는 길 곳곳에 '사과따기 체험' 플래카드를 붙인 농장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사과를 골라 따서 직접 구입도 가능하다.
'애플피아 농장' 이주형(48·영주시 부석면 소천리) 대표는 "올해 사과따기 체험(사진 ④)은 11월 초순까지 계속될 것이며, 제철을 맞는 영주의 꿀사과(후지)를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저마다 어른주먹보다 큰 사과를 몇 개씩 안고 나온다. 들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역사 시간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단풍이 따라온다.
이석수기자 sslee@msnet.co.kr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 주머니 팁
첫날
하회마을 주차료 승용차 2,000원
입장료 어른 2,000원 어린이 700원
점심 안동찜닭 7,000원
하회탈·목걸이 채색체험 5,000원
저녁 안동간고등어 정식 7,000원
숙박 선비촌 2인실 30,000원, 4인실 50,000원
둘째날
아침 선비촌 저잣거리 백반 5,000원
점심 부석사 입구 산채정식 10,000원
부석사 주차료 승용차 3,000원
입장료 어른 1,300원 어린이 800원
사과따기 체험 5,000원
▨ 경험자 Talk
이번 주는 대규모 여행단이었다. 특히 경기도 남양주시 결혼이민자 가족지원센터에서 25가족이 단체로 참여하는 등 모두 100여 명이 동행했다.
▷나까야 미와꼬(42·여·남양주시 금곡동)=한국 남편과 결혼해서 14년째이지만 한국의 문화를 잘 몰랐는데 TV에서만 봤던 옛집·탈춤을 직접 접하니 감동적이다.
▷김아끼꼬(36·여·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선비촌 고가에서 하룻밤이 아주 인상적이다. 방 내부 분위기가 매우 좋다. 아파트생활과 달라도 아이들이 불평 없다.
▷박연호(62·서울시 강남구 일원동)=지난 7월 영양·청송 여행에 이에 두 번째다. 경북 방문의 해 주말테마여행이 타 시도 관광정책의 모범사례가 될 것 같다.
▷이호일(63·서울시 도봉구 수유동)=경북이 관광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점이 보인다. 다만 하회마을이 예전보다 상업적 분위기여서 아쉽다.
*이번주 여행코스:병산서원-하회마을-별신굿 관람-영주 선비촌-전통혼례체험-소수서원-부석사-사과따기 체험
*'어서 오이소' 다음주(27, 28일) 코스는 '단풍과 어우러진 경북의 매력을 찾아서-경산·안동·청도'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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