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서울서 7개종단 연합 축제…종단간 화해는 국민화합과 직결
둔덕진 길모퉁이에 무리지은 갈대가 가을 바람에 하염없이 서걱대던 어느 날, 동해안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들꽃마을'에 들른 적이 있다. 들꽃마을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보금자리이다. 오갈 데 없는 노인과 병든 사람들이 고단한 삶의 끝자락을 그나마 편안하게 매어두고 지내는 곳이다.
이 처연한 이웃들과 20년 세월을 함께해온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교와 신앙 그리고 삶에 대한 온갖 상념들이 10월 바닷가의 하얀 포말처럼 일어났다가 스러지곤 했다. 이제는 본인의 몸조차 불편하면서도 십시일반으로 들어오는 후원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들꽃마을을 어렵게 운영하며 중증환자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까지 시키며 살아온 신부님!
그의 삶이야말로 "神(신)은 승리와 영광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패배와 비극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란 어느 성직자의 말을 실증하고 있었다. 여기에, 無所有(무소유)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며 '작은 나를 버리고 큰 나(眞我)'를 추구하면서 求道(구도)와 利他(이타)의 삶을 살다간 어느 스님의 행적이 오버랩되었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는 종교문제로 적잖게 시끄럽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로 교회의 선교방식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신정아-변양균 사건의 파장으로 불교계가 웅성거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國敎(국교)를 가진 나라는 아니지만 종교의 영향력이 큰 나라이다. 형세가 있는 산이라면 골마다 절(寺)이요, 웬만한 도시에는 골목마다 교회가 있다고 할 만큼 종교적 토양이 비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많은 종교들이 다양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어 어떤 종교학자는 '한국은 세계종교의 백화점'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종교들이 우리 사회에 순기능만 했을까? 사람들을 신에게 인도하기보다 교회나 종파로 끌어들이고, 부처에게로 인도하기보다는 절집으로 불러모으는 데 더 애를 쓰지는 않았는지? 여기서, 일본의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의 말을 떠올려본다. "이단 중에서도 가장 징그러운 이단은 '자기 교회만이 옳은 교회, 자기 교파만이 옳은 교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도 덧붙여 본다. "예수 같은 죽음을 죽지 않고 예수 같은 부활을 바라는 것은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교회가 천국을 건설하는 주택공사가 아니라, 단순히 천국행을 주선하는 여행사가 되어서는 안된다."
종교는 인간의 아픔과 비극에 대한 깊은 탄식과 눈물이어야 하는데, 이 땅의 숱한 종교들은 혹여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고 교단과 교파의 성장에만 더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았는지…. 한국신학대의 한 교수가 지적한 내용도 되새겨볼 만하다. "종교에도 비판적 지성이 필요하다. 신앙하는 이의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는 냉철해야 한다. 한국의 종교는 머리와 가슴이 다 뜨거운 게 탈이다."
그러나 각종 종교의 여러 교단과 교파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가 이렇다 할 종교갈등이 없이 나름대로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 또한 종교인들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청정한 기도와 수행 참선의 덕분이 아닐까.
오늘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 법회'가 열렸다. 최근 조계종단이 처한 상황에 대한 자정과 혁신을 천명하는 야단법석이었다. 60년 전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기치로 한국 불교계의 새 장을 열었던 그 '봉암사 결사' 정신이 오늘의 새로운 수행종풍을 진작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내일은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국내 7대 종단이 '두 손 꼭 잡은 종교, 함께 나누는 평화'란 주제로 서울에서 축제를 연다.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특히 개신교 목사가 이슬람교를, 불교 스님이 천주교를, 천주교 신부가 원불교를, 원불교 교무가 개신교를 칭찬하고 평화의 시를 함께 낭송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느꺼운 일이다.
들꽃마을의 신부님처럼, 봉암사 결사를 주도했던 스님처럼, '교회병'이 아닌 '십자가병'에 걸린 종교인들이 많을수록, '절병'이 아닌 '부처병'에 걸린 불자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들꽃마을 앞 황금들녘의 청량한 가을바람처럼….
조향래(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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