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담관암 아들 간호 정성분 할머니

입력 2007-10-17 09:22:33

"고생만 한 우리 아들 좀 사는가 했더니…"

▲ 정성분(81) 할머니가 대구의 한 병원에서 담관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 서명진(57) 씨의 휠체어를 밀고 있다.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 정성분(81) 할머니가 대구의 한 병원에서 담관암으로 투병 중인 아들 서명진(57) 씨의 휠체어를 밀고 있다. 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도 라면박스 등 폐지를 차곡차곡 쌓았다. 노끈으로 폐지 다발을 묶는 품이 영 어설펐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한 달에 많으면 1만 5천 원 정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대구 서구 원대동의 단층짜리 다가구주택. 얼핏 쓰러지기 직전인 할머니의 한 평도 되지 않는 방에는 곰팡이 냄새가 자욱했다. 여름내 비가 새 곰팡이 냄새가 더해졌다며 안쓰러워 했다. 싱크대 수챗구멍으로 올라오는 쥐새끼들이 큰 골칫거리라는 말도 했다. 정성분(81) 할머니의 시름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들이 있는데 병원에서 투병 중이유. 암이라고 하는데 병원에는 절대 못 오게 하더구먼. 엄마가 오면 울게 되고, 자꾸 울면 내 명이 짧아진다나. 내가 가고 지가 살아야하는데 제가 지 목숨줄을 갉아먹고 있는 것 같아서…."

할머니의 아들 서명진(가명·57) 씨는 담관암으로 투병 중이다. 간에서 생긴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담관인데 이곳에 암세포가 생겨버린 것이었다. 할머니는 대나무 끓인 물이 이 병에 좋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매일같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병원에 찾아오는 것을 싫어해 가져다주지도 못한다며 고생만 한다고 했다. 그러고도 그게 부모 마음이랬다.

"우리 아들은 오래 살아야 해. 죽을 듯이 고생만 하고 이제 좀 번듯하니 사는가 했더니 지지리 복도 없지."

서 씨의 슬하에는 딸이 둘 있다. 큰딸(31)은 시집을 갔고, 둘째 딸(29)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서 씨의 아내는 큰딸이 아홉 살 되던 해 춤바람이 나서 아이들을 버려둔 채 집을 나갔다고 했다. 서 씨는 그때부터 벽돌공장에서 벽돌을 날랐고, 일용직 잡부로 전전하며 두 딸을 죽어라 키웠다고 했다. 할머니가 교통사고가 난 것도 당시 며느리를 찾아다니던 중이었다. 그때 한쪽 눈이 튀어나와 이식수술을 한 것이 이제는 한쪽 눈을 잘 뜨지도 못하게 됐다.

"상처가 많은 아이들이여. 딸들은 엄마 얘기만 나오면 '죽어라고 버리고 간 사람 뭐하러 얘기하냐.'며 악을 써 대. 그 모습이 어찌나 서글픈지. 아들 녀석도 화가 나서 술만 마시다 취하면 울고 또 울었어. 우리 딸들 불쌍해서 어쩌냐고."

서 씨는 3년 전에도 두 차례 심장병 수술을 했다. 간호사인 큰딸의 월급에서 매달 50만 원씩 원천징수됐다. 그렇게 갚고 나니 암이 생겼다. 1천만 원이 넘는 돈을 또 징수당하고 있다. 할머니는 시집간 손녀가 남편에게 미움이라도 받으면 어쩌냐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할머니가 1년에 30만 원씩 내는 집값도 6년이나 밀려 있었다. 두 다리에 인공관절 수술을 해 잘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폐지를 줍는 것은 오래 산 죗값을 조금이라도 치르고 싶기 때문이랬다. 1kg당 50원이나 준다고 하면서.

"선상님 왔으니 그 김에 아들 얼굴 한번 보러 가자. 염치는 없지만 좀 태워줄란교? 대나무 달인 물 다 떨어졌을텐데 그것도 좀 가져다 주구로.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번 더 봐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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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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