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홀로 계신 어머니…

입력 2007-10-13 15:38:07

가을바람 설렁설렁대는 저녁, 고향에서 가져온 알밤봉지를 풀어 본다.

황갈색에 윤기 자르르한 놈, 숭숭 벌레 먹은 놈, 컴컴한 세상 속에 알밤들 모여 앉아

까르르 웃는다.

아람 벌어졌던 모습을 상상하며 룰루랄라 샤워기로 씻고 노란 양은냄비에 그득 넣어 불에 올리면 뚜껑 들썩거리며 가을이 익어간다.

친정엄마는 딸들이 온다는 며칠 전부터 혼자만 아신다는 밤나무 아래서 가을을 주워 모으신 것이었다. 큰딸네, 작은딸네 주시려고 두 봉지에 사이좋게 나눠 담아 냉장고에 보관해 두셨다. 살아도살아도 철이 안 드는 큰딸년은 헤헤거리며 차에 싣고 오기에 바빴다.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설설 기어다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알밤을 꺼내 식혀두었다.

퇴근한 남편과 개구쟁이 아들이 마주앉아 다람쥐처럼 야금야금 맛있게 까먹었다.

아들녀석은 찻숟가락까지 동원해서 싹싹 긁어먹는다. 사내 둘이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쟁반엔 가을이 수북이 쌓였다. 그랬다. 엄마는 좋은 건 모두 자식에게 내주시고 이젠 뼈와 가죽만 남으셨다.

지금쯤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는 무얼 하고 계실까?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 당신의 모습은 복사꽃처럼 고우셨는데, 당신의 얼굴은 자식걱정에 모진 세월로 깊게 주름지고 희고 고우셨던 당신의 손은 자식뒷바라지로 사포처럼 되었고 당신 육체에 꽃잎마저 힘들어하는 못난 자식에게 떼어 주시고 쇳덩이 같은 삶의 무게로 이젠 자식들 나무랄 힘도 없으신 어머니!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 되거라.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무너져 가는 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자식들 모습만 보이는 어머니! 당신의 기쁨과 사랑은 모두 자식들에게 내주시고 당신의 슬픔은 모두 삼키시니 나는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그리워 하늘 쳐다보니 어느새 당신은 환갑이셨고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 오늘밤은 당신의 품처럼 푸근한 보름달이 휘영청 떠 못난 저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네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여치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 자신의 소리에도 귀 기우려 보렵니다. 어머니 영원히 사랑합니다.

최인숙(대구시 남구 봉덕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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