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라는 말에는 물이 없다. 기쁨이라는 말에는 기쁨이 없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사랑이 없다. 그것은 그냥 말일뿐이다. 사실에 바탕을 둔 말이라 해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실재를 나타내기 위한 대용품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세계와 실재의 세계는 많이 다르다. 사진이나 영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살아있는 세계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세계이며 죽어 정지되어 버린 세계다.
사하라 사막 오아시스에 살던 소년 이드리스는 프랑스에서 온 금발의 여자에게 우연히 사진을 찍힌다. 소년은 자신의 사진을 찾기 위해 지중해를 건너 프랑스로 간다. 사막에 살던 소년은 사막을 떠난 후에 비로소 사막 이야기를 듣는다. 소년이 음식을 받아먹었던 접시와 어머니가 돌리던 맷돌이 그곳 박물관에서는 이미 손도 댈 수 없는 미라로 변해 있다. 사막은 사진관의 배경막에 들어앉아 있고, 오아시스는 낙원을 선전하는 포스터 속에도 들어 있다. 영화감독은 사막에서 온 소년에게 '어린 왕자'를 이야기한다. 소년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뿐.
소년은 말한다. "여기 와보니까 어디에 가나 사진이 보여. 아프리카 사진들도 있어. 사막과 오아시스를 찍은 사진들 말이야.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알아보지를 못하겠어. 사람들은 내게 말하지. 이게 네 나라야, 이게 너야 하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내 나라나 나를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일자리를 구하던 소년은 마네킹 모델이 되기도 한다. 마네킹 수집가는 말한다. '마네킹들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이므로 그것들을 찍은 사진은 이미지의 이미지'라고. 소년은 한번에 열 개, 또는 백 개씩 복제되어 무수한 밀랍 인형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전율한다.
작가는 서예가의 입을 빌려 이 소설의 일관된 주제를 숨기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문제는 이미지이니라. 다시 말해서 살 속에 깊이 박힌 선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형상이 문제인 거야. 이 선들은 자기들의 지배 아래에 들어온 자들을 모두 물질의 노예로 만든다. 이미지는 사람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광채를 지니고 있어. 자기와 눈이 마주친 자들을 모두 돌로 변화시키는 메두사의 머리와 같은 거지."
'이미지는 마약'이다. 그것은 '준비되지 않는 영혼들을 강력하게 홀린다.' 이미지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호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여기서 '황금구슬'은 순수한 기호이자 이미지 없는 실재 세계를 의미한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이미지에 중독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 이미 상품을 사는 시대가 아니라 상품 안에 담긴 이미지를 사는 시대라지 않는가. 눈부신 영상 매체가 실시간으로 수천 겹의 그림자(이미지)를 뽑아내어 실상을 뒤덮는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어울려 현란한 피륙을 짜더니 드디어 가상세계라는 엄청난 그림자 공간까지 창조했다. 가상의 공간은 실상의 시간을 잡아먹고 빠르게 성장한다. 그래서 세상엔 시간이 넉넉한 사람이 점점 드물어진다. 혹여 지금이라도 시간의 결핍을 느끼는 이라면 자신이 그림자 세계에 갇힌 게 아닌가 퍼뜩 되돌아볼 일이다. 그렇다면 자신도 모르게 쌓아둔 산더미 같은 그림자의 잔해들을 헤치고 나와 우선 저 하늘부터 올려다보자. 가을 하늘이 수정보다 맑다.
bipas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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