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의 왕립지학협회회원이던 이사벨버드 여사의 기록이다.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활보하고 나선다.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
이어 그는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며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고 절규한다.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며 거대한 뿌리를 그리워한다.
웰빙이 화두다. 행복하자는 말이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환경이 우선이다. 그러나 행복은 혼자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남과 어울려 같이 잘 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웰빙을 말하는 사람들은 전통과 역사를 기억하자고 한다. '잘 살아보세' 이후 추구한 성장보다 여유를 가지자고 한다. 명품이 곧 웰빙이 아니며 더불어 같이하지 않고서는 가질 수 없는 게 웰빙이라고 한다.
안동을 비롯, 영주 봉화 영양 청송 군위 의성 예천 문경의 경북 북부지역은 가난하다. 변변한 공장 하나 없다. 네거리 신호등이 고작 한 개뿐인 군도 있고 재정자립도가 전국 꼴찌도 있다. 먹고살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이 북부지역이다.
그러나 경북 북부는 대구와 서울이 가지지 못한 게 있다. 이곳 샐러리맨들은 와이셔츠를 하루 만에 벗지 않아도 된다. 때가 끼지 않는 맑은 공기 덕분이다. 나이 어린 이는 어른에게 먼저 머리를 숙인다. 스물네 시간을 사는 것은 같지만 뛰어다니지 않아도 괜찮다. 돌아서면 다가오는 제사는 힘든 일이지만 옛 어른들의 삶과 정신을 알게 한다. 잘 먹고 잘 입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굶지 않는다. 맑은 공기와 청량한 물에 싱싱한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가난하지만 여유롭고,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자는 전통을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부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바라는 웰빙이 아닐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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