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룻을 듣다
박옥위
플룻이 내 그리움의 세포를 채울 동안
구멍을 빠져나간 공기는 안전하다
나비는 포물선을 그리며 빛을 쏟아내고 있다
앞치마에 손을 닦고 식탁에 와 앉는다
책장을 넘기고 미끄러져 간 하루 해
이윽고 한때의 폭풍우가
나를 흠뻑 적신다.
저녁입니다. 미세한 신경의 올을 조심스레 잡아당기는 듯 첨예한 긴장의 선율이 느껴지는데요. 그 선율이 감미롭게 잦아들면서 행간에 강한 여운을 불어넣습니다.
플룻(플루트)을 듣는 것이 곧 그리움의 세포를 채우는 일이기에, 화자는 거기서 더할 수 없이 안온한 정서적 위안을 얻습니다. 여북하면 나비가 포물선을 그리며 빛을 쏟아내는 몽환적 감흥에 젖기까지 할까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식탁에 와 앉는다.'는 구절에서 그런 시간의 향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화자의 적극적인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플룻의 선율 자체에 대한 공감도 공감이지만, 미묘한 마음의 무늬들이 연방 선율을 따라 나옵니다. 식탁이건 책장이건 가 닿는 족족 선연한 자취를 남기지요. 이윽고 한때의 폭풍우가 온몸을 흠뻑 적시며 절정의 고비를 넘어서는 플룻. 그 완미한 감동 속으로 한껏 고조된 그리움의 정서가 천천히 미끄러져 갑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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